‘나’를 화자로 세우는 1인칭은 작품 속 화자를 아티스트로 착각하도록 하는 훌륭한 트릭이며, 동시에 듣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를 화자와 동일시하도록 만드는 매력적인 장치이다. 그래서 1인칭의 ‘나’를 좇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작품 속 화자가 되고 또 아티스트 본인이 된다. 그렇게 1인칭은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버리고, 끝내 우리로 하여금 음악이 담고 있는 매력적인 세계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한다.
백예린은 음악에서 1인칭을 잘 구현해내는 뮤지션이고, 그 중에서도 “Zero”는 특히 더 주목해야 할 곡이다. 백예린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듣는 이를 집중시키고, 동시에 깔끔한 고음 처리는 듣는 이를 편안하게 만들어, 노래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말하듯이 노래하는 방식은 그녀가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인상을 한가득 안겨준다. 그리고 보컬의 뒤에서 과하지 않게 받쳐주는 피아노와 종종 터져 나오는 기타 리프는 ‘나’의 이야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때의 ‘나’는 노래 속 화자일 수도, 듣는 이일 수도, 어쩌면 백예린 자신일 수도 있다. 다양한 측면에서 훌륭하게 구현된 1인칭은 모호함을 가져오는데, 이 모호함으로 인해 우리는 “Zero”를 ‘나’ (화자)의 이야기이자 ‘나’ (백예린)의 이야기이고 ‘나’ (자신)의 이야기로 듣게 된다. 올해의 트랙이라면 으레 갖춰야 할, ‘실험성’이나 ‘장르 문법에 대한 충실함’, 혹은 ‘돋보이는 음악적 완성도’ 같은 덕목들은 조금 부족할지라도 이 트랙을 선정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트랙만큼 내게 ‘나’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올해의 트랙은 찾기 힘들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