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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나 나보다 훨씬 거대한 세계

전시 〈나 외의 우상을 만들지 말고 ... 섬기지 말라〉 도록 수록

review on event in 2019 at 전시 도록에 수록

이미지는 현실을 재현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세계의 파편이다.
그것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사물이다.
당신이나 나 같은 사물이다.
- 히토 슈타이얼, 「당신과 나 같은 사물」1

“아이돌idol”이란 무엇인가. 아주 짧지만 명료한 답을 제시하기가 너무 어려운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몇 가지 사실들을 먼저 정리해보자. 우리 말로는 “우상”으로 번역되는 이 개념은 대개 종교나 철학의 영역에서 숭배 대상의 상을 물리적으로(주로 시각적으로) 구현해 놓은 것을 지칭한다. 한편, 2018년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아이돌”이라고 부르는 대상은 특정한 방식으로 유사한 형식의 음악적 활동을 하는 대상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아이돌”은 곡이나 앨범마다, 더 넓게는 활동 전체에 걸쳐 특정한 컨셉을 미리 설정하여 그에 맞추어 결과물을 제시하고자 노력한다.2 이러한 아이돌 개념은 “아이돌 산업”이나 “아이돌 팝”과 같은 변용을 낳는다.

그런데 종교나 철학에서의 “아이돌”과 지금-여기의(주로 대중음악과 관련한) “아이돌”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우리는 왜 둘을 같은 이름으로 호명하는가. 두 대상 모두 그 근원에는 ‘이미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아이돌”은 숭배 대상의 상(象)이 그 근원이기에, 필연적으로 이미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후자의 개념에서 사용된 “아이돌”이라는 개념은, 앞서 진술한 것처럼, 미리 설정된 컨셉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특정한 이미지를 상정하여 결과물을 제시하는 활동에 기반하기에, 당연히 이미지에 의존한다. 따라서 아이돌의 본질을 이미지로 규정하는 작업은 형식적으로 타당한 논증처럼 보인다.

아마 여기까지는 다소 뻔한 이야기일 것이다. 벌써 몇 년 전부터 아이돌의 근원에 이미지가 놓여있다는 논의3가 존재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이제 이야기를 조금 확장시켜보자. 히토 슈타이얼은 자신의 글에서 이미지가 “당신과 나 같은 사물Thing”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아이돌의 근원에 놓여있는 것들이 곧 사물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동일성identification 문장이다. 왜냐하면, 아이돌의 핵심은 이미지이고, 슈타이얼의 논의에 따르면 이미지는 곧 사물들이기에, 결국 아이돌 또한 사물들과 동치 관계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 사물들(이미지)이 전부인가? 아이돌을 단지 사물들(이미지)이라고 하기엔 그것은 이제 너무 비대해지지 않았는가? 오히려 아이돌은 하나의 세계에 더 가깝지 않은가?

사물들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감정, 믿음, 양상, 맥락, 관계 같은 것들이 사물들/이미지 곁에 덕지덕지 붙어있다.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지,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4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문장을 떠올린다. 사물들은 유일하게 실재하기에 세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저 사물들만으로는 결코 세계일 수 없다. 이름들을 쭉 나열하더라도 그것이 하나의 문장이 되지는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수히 많은 사물들이 존재하더라도, 그것들 사이에 관계나 맥락이 없다면 한낱 사물에 불과할 뿐이다. 아이돌도 마찬가지이다. 때때로 아이돌 그 자체인 것처럼 믿어지는 이미지/사물들을 둘러싼 수많은 주체들의 감정, 이미지를 토대로 성립하는 관계, 산업이나 현상으로 호명되곤 하는 특수한 맥락과 같은 것들까지 함께 다룰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아이돌을 오롯이 분석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곧 당신은 물을 것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것이냐고. 하지만 그 질문은 내가 당신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은 아이돌이라는 하나의 사물에 대해, 그리고 하나의 세계에 대해 무엇을 어찌하고 싶은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아이돌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스스로가 하고자 하는 질문을 명확하게 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흔히 주어진 질문을 ‘아이돌이라는 사물들로부터 무엇을 보고 들을 수 있는가?’라고 착각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서술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물들은 자연법칙에 의해 발생하기에 인과적Causal이고, 그러므로 평가적으로evaluataive가 아니라 서술적descriptive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돌의 음악을 조목조목 뜯어보고, 아이돌의 퍼포먼스를 분석하고자 하며, 아이돌의 산업적 성과를 수치화 하려는 등, 이미 보편화된 방식의 답변들은 대부분 이에 해당할 것이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물음을 던져 왔다. 따라서, 이제는 사물들에 대한 서술들을 단서 삼아 ‘아이돌이라는 세계로부터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사유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하지 않는가? 질문이 달라졌으므로 그 답도 달라져야만 한다. 사물들을 에워싼 것들은 규범적normative이고, 그렇기에 서술적으로가 아니라 평가적으로 답변 되어야 한다.

당신이 진술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당신이 묻고 답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물들(이미지)인가 아니면 사물들을 에워싼 무언가인가. 아이돌이라는 ‘당신이나 나 같은’ 사물들(이미지)이 아니라 ‘당신이나 나보다 훨씬 거대한’ 세계에서, 부디 길을 잃지 않기를.

당신이나 나보다 훨씬 거대한 세계2019-02-01review on eventNow here
히토 슈타이얼. 『스크린의 추방자들』. 김실비 역. 워크룸프레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