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우리의 역설은, 어떤 하나의 규칙이 어떠한 행동 방식도 확정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각각의 모든 행동 방식이 그 규칙과 일치되게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1
§202. 그렇기 때문에, ‘규칙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의 실천이다. 그리고 그 규칙을 따른다고 믿는 것은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규칙을 ‘사적으로’ 따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다면, 규칙을 따른다고 믿는 것은 규칙을 따르는 것과 동일한 것일 터이기 때문이다.2
위지영과 조율이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Sche’mer United의 라이브 퍼포먼스 [Space 4 AWOL]을 직접 보고 듣기 전, 나는 작업의 결론이 그리 성공적으로 도출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음악이 음악을 위한 장소[Space]에서 스스로 무단 이탈[AWOL]하는 조건들”을 탐구하겠다는 이들의 목표는, 다르게 말하자면, 음악에 대한 새로운 규칙들을 찾아내겠다는 것이기에, (위에서 인용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적 탐구』에서 제시했던 ‘사적인 규칙 따르기’의 실례화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적인 규칙 따르기’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비트겐슈타인의 논증을 상기해본다면, [Space 4 AWOL]의 목표도 실패할 것이라는 유추가 가능해진다.
정말로 이들의 퍼포먼스 [Space 4 AWOL]은, 비트겐슈타인을 경유한 나의 예상대로 실패일까? 그렇지 않다면, 과연 “지금, 여기의 음악에 대한 새로운 책략”을 모색하겠다는 Sche’mer United의 포부는 성공적으로 달성되었는가? 나는 지금부터 이 지점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를 시도할 것이다.
일단 주어진 사실들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3시간 정도 진행된 Sche’mer United의 퍼포먼스는 조율과 위지영이 돌아가면서 수행한 디제잉과 라이브 퍼포먼스로 이루어졌다. 관객들은 서교예술실험센터에 방문하여 직접 퍼포먼스를 보고 듣거나, 유튜브를 통해 제공된 스트리밍으로 퍼포먼스를 보고 들었다.3
나는 방금 [Space 4 AWOL]의 필요조건으로 설정된 두 공간을 언급했다. Sche’mer United가 서교예술실험센터의 지하라는 오프라인 공간과 유튜브 스트리밍이라는 온라인 공간을 점유하고 음악을 재생하고 연주했다는 사실은, 이들의 목표와는 역설적으로 [Space 4 AWOL]의 기저에 하나의 규칙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음악은 결국 재생되고 연주되며 청취 되는 하나 이상의 공간4을 필요로 한다.’는 규범으로서의 규칙은 결국 파기하지 못한 것이다. 끝내, 이들은 음악의 선험적 조건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 법한, 음악적 공간의 필연성으로부터 이탈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따르는 규칙Rule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따르는 규칙은 때로는 규범Norm이지만, 또 때로는 규약Convention이기도 하다. 우리는 규칙 따르기Rule Following에 있어서, 선험적으로 주어진 무언가인 규범을 따르기도 하지만, 관습을 토대로 타인들과 함께 일종의 약속을 맺듯 새로이 규약을 세우기도 한다.
‘규칙’의 이러한 애매성을 고려한다면, 나는 분하지만 위지영과 조율이 규약의 층위에서만큼은 새로운 규칙을 세우고 있다고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이들은 분명 한 가지 새로운 규칙을 세우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목표했듯 음악의 공간적 규약을 새로이 한다. 특정 장소에서 특정 장르의 음악이 연주되거나 재생되어야 한다는 ‘음악에서의’ ‘기존의’ 규약을 깨뜨린 후, 그 자리를 예상하지 못했던 음악들로 채워 넣는다. 화이트 큐브와 블랙 박스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할 법한 공간을, 앰비언트나 노이즈 중심의 음악들부터 클래식이나 현대 음악을 비롯하여 클럽에 훨씬 더 어울릴 법한 전형적인 댄스 뮤직들까지, 매우 혼란스럽게 채운다. 이렇듯 장르적 경계들을 넘나드는 선곡과 퍼포먼스로 단일한 공간을 채움으로써, 이들은 장소와 음악의 상응correspondence 관계에 대한 기존의 규약을 파기시킨다.
그러므로 나는 Sche’mer United의 [Space 4 AWOL]은 그 목표에 있어서 실패한 동시에 성공했다는 모순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평가야말로 이들의 작업이 결국 규칙으로부터 성공적으로 이탈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세계의 어떤 존재자도 이탈할 수 없는 모순율이라는 거대한 규칙으로부터 이들은 유유히 벗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에, 나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이들에게서 어떤 희미한 빛Sche’mer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