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eard, D., Gloag, K. (2016). Musicology: The Key Concepts(https://doi.org/10.4324/9781315647463). London: Routledge. pp 152 - 158. 에 수록된 글입니다. 이 책은 음악학의 핵심 개념들을 일종의 백과사전처럼 정리하고 그 개념들의 의미나 관련 논의들을 요약해주는 앤솔로지의 일종으로, 실려있는 여러 항목들 중에서 "청취" 개념에 대한 개괄적 문헌으로 이 글을 보게 되어 거칠게 번역을 해보았습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만 해주시고 가급적 원문을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1:1] 분명한 이유들 때문에, 청취는 음악학자, 음악 이론가, 음악 분석가, 음악사가, 그리고 음악에 관심을 가진 다른 이들에게 오랫동안 관심의 대상이었다(Theory, analysis 항목을 보라). 주목할만한 선구적인 연구들에는 Hugo Riemann의 『음악 청취에 관하여On Musical Listening』(Uber das musikalische Horen)(Leipzig, 1874)와 『우리는 음악을 어떻게 듣는가?How Do We Hear Music?』(Wie horen wir Musik? Drei Vortrage)(Lepizig, 1888), 또한 Heinrich Besseler의 『음악 청취의 근본적인 문제들Fundamental Issues of Musical Listening』(Grundfragen des musikalischen Horens)(Leipzig, 1926)과 『현대의 음악 청취Musical Listening in the Modern Age』(Das musikalische Horen der Neuzeit)(Berlin, 1959)이 포함된다. Riemann은 음악이 어떻게 들려져야만 하는지보다 음악이 어떻게 들리는지에 덜 관심을 갖는[즉, 음악이 어떻게 들려야만 하는지에 더 관심을 갖는] 청취에 대한 규정적인prescriptive 접근을 취했다(Rehding 2003, 9). 게다가, Riemann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듣는 것과 쾰른 대성당의 앞에 서 있는 경험 사이의 비교를 통해 드러난 뚜렷한 문화적 관점을 가졌다. 시청자에게는 가장 큰 대칭과 가장 작은 디테일 사이의 ‘옳은 관계’를 고려할 시간이 있지만, 청자에게는 그러한 이점이 없는데, 왜냐하면 음악적 디테일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Riemann이 청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음악적 디테일에 대한 보다 더 힘든strenuous 주목이다, 즉, 베토벤까지의 조성적 작품들의 건축적 구조와 유기체적 통일성을 포착하는 (아래에서 더 논하게 될) 구조적 청취의 한 형태이다(organicism과 form 항목을 보라). 대조적으로, Besseler는, 자신이 공연장에서의 청취의 수동적이고 보다 개인적인 종류로 여긴 것에 반하여, Gebrauchsmusik(‘실용음악music for use’)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청취에 대한 관심을 도입했다 – 비록 이 전망은 이내 히틀러의 나치 이데올로기에 대한 Besseler의 지지에 휘말리게 되었지만 말이다(Pritchard 2011을 보라; 또한 Wegman 1998을 보라; 르네상스 음악에서의 청취에 관한 Besseler의 작업에 대해서는 Borgerding 1998을 보라).
[2:1]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 초 이래로 변화한 것은 – 그리고 더 급격하게는 21세기로 전환되는 시기 이래로 – 우리가 음악을 듣고 또 청취하는 상황들과 환경들이다. 그러한 변화들은 대체로 레코딩과 디지털 기술의 결과로서 발생했는데, 이는 어쿠스마틱한 청취(음악의 원천이 보이지 않거나 스피커나 헤드폰으로부터 나오는 음악을 청취하는 것)의 확산을 야기했다. 결과적으로는 공유된 청취 관행이나 사회적 활동으로서의 청취에 대한 Besseler의 아이디어의 여러 버전들이 온라인 플랫폼들과 DJ 문화 그리고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통해 오늘날의 사회에서 규칙적으로 실행되고 있다고 주장될 수 있다.
[2:2] 청취에 관한 뿌리 깊은 이론적 관점들에 더하여, 소리 지각에 대한 과학적 접근들도 긴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한 연구들 중에서 주목할만한 것들은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의사인 Hermann von Helmholtz에 의한 것인데, 그는, 인간 귀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따라 『음악 이론을 위한 생리학적 기초로서의 톤에 대한 감각에 관하여On the Sensations of Tone as a Physiological Basis for the Theory of Music』에서 논의되었듯, 자신의 관심을 음향학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음색timbre의 지각에서의 배음들harmonics의 역할과 자연적인 음률temperament로 돌린다. Helmholtz의 아이디어들은, 조성 체계에 대한 동일률equal temperament 혹은 합리화하는 경향성에 대한 경험적 지지를 제공하지 않는, 청각적 지각의 변덕스러움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자신의 표현주의적 음악적 언어로 비이성적인 ‘감각들의 세계world of sensations’를 포착하기를 소망했던 쇤베르크를 포함하는 모더니스트 작곡가들 사이에서 Helmholtz의 작업이 공감적 귀sympathetic ear를 발견했다는 것은 그리 놀랍지 않을 것이다. (Steege 2012을 보라; 또한 modernism 항목을 보라).
[2:3-3:1] 청취에 대한 더 넓고, 더 생태학적인 접근들은 또한 음악학에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드러내고 또 음악학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증명되었다(ecomusicology 항목을 보라). 이 지점에 있어서 영향력이 큰 텍스트는 음악학자이자 음악 심리학자인 Eric Clarke의 『청취의 방식들: 음악적 의미의 지각에 대한 생태학적 접근Ways of Listening: An Ecological Approach to the perception of Musical Meaning』(Clarke 2005)인데, 이 저작은 James Gibson의 지각 이론과 Albert Bregman의 청각적 장면 분석에 의존한다(Gibson 1966 1979를 보라; Bregman 1990을 보라; 또한 psychology 항목을 보라). Clarke가 관심을 끌어냈던 하나의 중요한 지점은 음악적 소리들은 다른 소리들과 동일한 장소, 혹은 [동일한] 소리 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sound 항목을 보라). 이는 듣기와 청취의 능동적인 본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특정한 소리들을 걸러내고 찾아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또 그러한 소리들이 어디에서부터 오는지, 그리고 그 소리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은 기표화하는지를 식별하려고 시도한다. Clarke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각은, 환경 정보의 선별pick-up이 내재적으로 강화되어 그 결과 체계가 환경과의 공명을 최적화하기 위해 자기-조정self-adjust하는, 자기-조율 과정이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이 세계를 지각할 때, 그들은 능동적으로 그렇게 한다[지각한다]. 지각은 본질적으로 탐구적explanatory이며, 환경에 관해 더 많은 발견을 하기 위해 자극의 원천들을 탐색하는 것이다… 공명은 수동적이지 않다: 그것은 유기체의, 환경과의 능동적이고 탐구적인 관계함engagement을 지각하는 것이다. (Clarke 2005, 19)
이 기술은 흥미롭다. 왜냐하면 이 기술은 소리에 대한 생리학적 반응으로서의 듣기와 소리를 처리하고 또 소리를 해석하기 위한 심리학적 결정decision으로서의 청취 사이의 관습적인 구분을 흐릿하게 하기 때문이다(Barthes 1985를 보라). 유사하게, 연주자 겸 음악학자인 John Butt은 다음과 같이 관찰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가 들은 것이 무엇이건 간에 그것을 특정한 형태들, 패턴들, 움직임들, 공명들, 감정들에 동화시켜야만 하며, 우리는 작곡가나 연주자의 구체적인 의도들에 선행하여 분명히 이렇게 한다… 만약 이 창의적인 청취 능력이 그러므로 모든 음악적 행위에 선행한다면, 작곡과 연주와 청취의 역할들 사이의 끊임없는 순환이 분명 존재할 것이고, 각각의 활동 – 각 활동이 분리되어 있는 정도까지 – 는 다른 행위들에 대한 갱신된 고찰에 의해 명료화될 수 있을 것이다. 살아남는 레퍼토리들은 우리에게 그것들이 창조된 시점에 감각적으로 그것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과거의 사람들이 혹은 다양한 평행한 문화들의 사람들이 평생 동안 자신들의 방식으로 들었던 ‘세속적 공식carnal formulas’라는 개념에 대해 어느 정도의 감각을 줄 수 있을 것이다. (Butt 2010, 7; 또한 emotion, creativity 항목을 보라)
이러한 생태학적 관점들은 수많은 다른 방식들의 소리와 청취의 상황구속성situatedness으로 확장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청취는 문화, 계급, 인종, 젠더, 그리고 다른 많은 관련된 요소들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음악이 제작되고 수용되는 역사적 시기에 의해 조건화된다(Johnson 1996; Riley 2004; Bonds 2006; Kaltenecker 2011; Gregor 2015). 인류학적 관점들과 사회학적 관점들이 청취의 상황구속된 본성과 관련되어질 수 있는 반면, 철학적이고 정신분석학적 질문들은 어떻게 그리고 왜 청취자가 그들이 하는 방식으로 특정한 소리들에 반응하는지를 고찰하기 위해 물어질 수도 있다(consciousness, emotion 항목을 보라). 예를 들어, 미국의 음악학자 David Schwartz는 Jacques Lacan의 정신분석학 이론의 렌즈를 통해 청취를 검토한다. 한 사례 연구에서, Schwartz는 존 아담스의 오페라 <중국에 간 닉슨Nixon in China>에 대한 청취 경험을, 미국의 미니멀리즘 작곡가들의 앰비언트적 관심사로부터 야기된 효과인, 소리적인 두번째 피부로 스스로를 감싸는 판타지에 비유한다(Schwarz 1997을 보라; 또한 Pyevich 2001을 보라; 청취의 역사와 철학에 대해 더 보고 싶다면, 다음의 링크를 보라…).
[4:1]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을 수도 있다: 음악은 함축된 청취자를 염두에 두고 쓰여지는가? Butt는, 몬테베르디의 오페라나 바흐의 수난곡처럼 긴 특정 작품이 ‘오랜 시간에 걸쳐 안전하고 통합된 자아에 대한 감각을 계발하는’ 구체적인 종류의 청취자의 의식적인 함양cultivation을 지표한다고 주장한다(Butt 2010, 18). Butt는 이러한 종류의 함축된 청취자와 두개의 다른 유형의 음악을 대조한다: 첫째, 청취자가 소리에 오직 반만 집중할 것인 형식적인 의례나 명상적인 목적을 위해 쓰인 음악처럼, 몰입된 듣기engaged hearing를 필요로 하는 작품들; 둘째, ‘청취자의 기대에 맞춰 의도적으로 연주하고 또 분명히 청중을 염두에 두고 고안된’ 보다 흔한 범주의 ‘청취자-지향적’ 작품들(ibid., 8). 예를 들어, 17세기와 18세기 푸가적 질감의 사용은 분명히 그러한 학습된 양식들에 친숙한 청취자들(청중들과 연주자들 모두가 해당한다)을 위해 의도되었다(style 항목을 보라; Chapin 2014b를 보라). Butt가 여기서 강조하는 핵심은 특정한 양태의 청취의 존재이다.
[4:2] 1800년대 즈음부터, 서구 예술 음악은 점점 더 청취의 완전히 집중하고, 훈련받고, 형식주의적 양태에 의해 지배받게 되었다(formalism 항목을 보라); 미국의 음악학자 Rose Rosengard Subotnik은 이를 ‘구조적 청취’라고 부른다(Subotnik 1996, 148 – 176을 보라). Subotnik의 이 용어 사용은 독일의 비판이론가 Theodor Adonrno가 자신의 1969년 에세이 ‘음악 분석의 문제에 관하여’에서 다룬 『구조적 듣기/청취(strukturelles Horen)』에 관한 논의를 따르는데(Adorno 2002, 164), 이 논의는 그의 책 『음악 사회학 개론』(1962)에서 더 광범위하게 다루어졌다. 여기서, 구조적 청취란 ‘전문가 청취자’와 연관되고 청취자와 청취 행위들의 유형학의 정점으로서 제시된다(Adorno 1976). 그러나 구조적 청취에 대한 S의 정의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쇤베르크의 에세이들에 대한 언급을 통해 더 발전되고(Schoenberg 1975를 보라), 그리고 계몽의 최종 단계와 Immanuel Kant의 1790년 저작 『판단력 비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 하반기의 독일과 영미권 학계에서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된 구조적 청취는 음악적 소리를 자율적인 것으로 간주하고(autonomy 항목을 보라) 또 기본적인 ‘관념idea’ 혹은 게슈탈트로부터의 주제적 발전과 중심이 되는 조직화 원칙, 즉 각 구성 요소가 전체와 연결될 수 있는 통일성의 근원, 에 대한 Riemann적 탐구에 의해 동기부여된다. 게다가, 청취의 이러한 양태는 본질적으로 서구의 정전적 조성 양식과 장르와 테크닉에 한정된다(canon, style, genre 항목을 보라).
[5:1] 물론, 구조적 청취의 대상인 음악 중 다수는 이러한 종류의 청취자를 염두에 두고 작곡되지 않는다(이를 테면, 바흐); 구조적 청취자를 염두에 두고 작곡하는 관행은 관람료를 지불하는 청중의 창발과, 베토벤 이후로부터 등장한, 음악 비평의 관련된 부상과 우연히 일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통틀어, 작곡가는 반복과 놀라움을 통해 청취의 덜 집중된 형식을 지각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음악적 사건에 대한 자신의 청자의 기억을 가지고 연주해왔다; 유사하게, 오페라와 연극과 제례 음악은 모두 집중의 다양한 양태들을 촉발한다.
[5:2] 구조적 청취라는 개념에 대한 저항은 비판이론가 Walter Benjamin의 1930년대 작업에서 눈에 띈다. B는, 그가 ‘기술 복제 시대’라고 명명한 것에서, 녹음된 소리가 청취자를 구조적 청취의 제약들로부터 자유롭게 한다고 주장했다: ‘기술 복제 시대가 예술을 그것의 제의적 근간으로부터 분리시켰을 때, 예술의 자율성의 가상semblance은 영원히 사라졌다.’[고 주장했다](Benjamin 1992, 220). 다르게 말하자면, 녹음된 소리는 공연의 설정에서 소리와 연주자 사이의 전통적인 연관성을 깨부수고, 그러므로 녹음된 소리는 청취자가 자신만의 용어로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한다. 청취자는 자신만의 목적을 위해 음악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6:1] 1980년대와 1990년대 신음악학의 부상에 따라, 청취의 수많은 다른 유형들이 듣기의 포스트모던적 양태들이라고 널리 명명된 것에 따라 제안되어왔다(postmodernism 항목을 보라; Dell’Antonio 2004를 보라) – 예를 들어, ‘일상적’ 청취(DeNora 2000; Clarke 2005), ‘가변적 청취plastic listening’(Szendy 2008), 혹은 대중 음악학자 Anahid Kassabian이 표찰화한 ‘유비쿼터스 청취’(Kassabian 2013) 등이 있다. 이러한 청취 양태들은 위에서 언급된 디지털적이고 어쿠스마틱한 소리의 확산에 의해 제공된 새로운 가능성들로부터 발생한다. 그러한 상황들에서 – 사적인 상황에서건(예를 들면, 집에서의 배경 음악) 공적인 상황에서건(예를 들면, 상점이나 카페, 술집, 체육관 등에서[의 배경 음악]) – 청취는 ‘동시적인 혹은 이차적인 활동’으로서 발생한다(ibid., 18). 그러나 대조적인 관점은 가상적이고 어쿠스마틱한 환경이 신체적인 것(body 항목을 보라)과 물질적인 것과 ‘살아있는 현존’의 감각이 전경화된 청취의 더 집중된 양태로 청취자를 끌어들이는 잠재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앰비언트나 일렉트로니카, IDM과 EDM과 같은 가상적 소리 환경은 소리의 물질성materiality – 음악과 사운드 아트의 질감, 리듬, 형태, 윤곽, 층, 역동적인 명암dynamic shadings, 미세한 디테일 - 으로 관심을 이끈다(제의적인 트랜스 문화에서의 깊이 있는 청취에 관한 인류학적 관점을 보고 싶다면 Becker 2004를 보라).
[6:2-7:1] 청취의 양태들에 대한 또 다른 제안은 프랑스의 어쿠스마틱 작곡가이자 이론가인 Pierre Scaeffer로부터 오는데, 그는 다음과 같은 네 양태를 제안해왔다: ecouter, comprendre, ouir, entendre. Clarke는 이 유형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Schaeffer에게 있어서, ‘ecouter’는 소리에 대한 책임이 있는 대상들과 사건들을 식별하는 것과 관련된 청취의 지표적 양태로서 특징지어진다 – 즉, ‘일상적’ 청취에… 가장 근접하게 상응하는 청취의 종류. 한편, ‘comprendre’는 소리를 기호로서 청취하는 활동으로, 그 활동 내에서 소리는 소리의 영역 바깥에 놓인 기의를 위한 기표의 역할을 한다 – 마치 건널목에서 신호 장치가 길을 건너가도 된다고 신호를 줄 때처럼 말이다. ‘Ouir’는 소리가 발생했다는 것, 즉 울려 퍼지는sonorous 사건이 존재했다는 것을 단순하게 나타내는register 것으로서 정의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entendre’는 소리의 특질들 그 자체 – 음색, 질감, 음량 등등 - 에 집중하는 청취의 종류이다. (Clarke 2005, 143)
영화 음악 이론에서(이는 오페라와 발레를 포함하여 모든 오디오-비주얼 매체에 적용가능하지만), 프랑스 영화 이론가 Michel Chion은 청취가 무빙-이미지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더하거나 바꾸는 여러 방식들을 반영한 청취의 세 양태(인과적, 의미론적 그리고 환원적)를 제시한다(Chion 1994, 25-34). C는 또한 영화에서의 소리가 청취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암시할 수 있는(혹은 없는) 방식들에 관한 가치 있는 질문들을 제기해 왔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청점point of audition’이라는 용어를 시점과 거의 동치적인 것으로서 제안한다(Cizmic 2015를 보라). 신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장애 연구도 청취와 듣기의 많은 대안적인 양태들을 제안해왔다. 『특별한 방법들: 음악에서의 장애Extraordinary Measures: Disability in Music』에서, Joseph Straus는 자신이 ‘엄청난prodigious’(예외적인), ‘보통의’,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가진disablist’, ‘눈이 먼’, ‘귀가 먹은’, ‘거동이 불편한’ 듣기라고 표찰화한 것들의 사례들을 논한다(Straus 2011). 노화의 영향(스트라빈스키, 카터)과 귀먹음의 시작(베토벤, 스미스) 외에도, 장애 연구는 청각 장애인 퍼커셔니스트 에블린 글레니 같은 연주자와 레이 찰스나 스티비 원더와 같은 맹인 음악가의 경험에 관심을 두고, 또 그러한 예술가의 경험들에 대한 중요한 질문들을 제기한다.
[7:2-8:1] 청취는 철학적 탐구의 주체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문화 이론가인 Jean-Luc Nancy는 청취가 주체성과 주체의 위치에 대한 존재론적 조건들에 있어서 본질적이라고 주장해왔다(Chua 2011을 보라; 청취 주체의 창발에 관한 역사적 관점들을 보고 싶다면, Moreno 2004를 보라; Erimann 2010을 보라). 존재의 한 상태a state of being로서의 청취를 통해, Nancy는 주체가 ‘내부/외부의 공유, 분할과 참여, 반(反)-연결de-connection과 전염’에 참여한다고 주장한다(Nancy 2007). Nancy에게 있어서, 청취는 의미라기보다는 감각으로서의 소리인 것 같다; Nancy에 따르면, 청취의 본질은 음색이다. 왜냐하면 음색은 ‘주체의 울림’이기 때문이다(ibid., 39).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청취의 문화적 우연성을 강조하는데, 이 사례에서 적어도 베를리오즈부터 드뷔시, 메시앙, 불레즈, 그리제 그리고 그 이후까지의 작곡가들은 음색에 높은 가치를 부여해온 프랑스적 시각French Perspective1을 보인다[?]. 청취자들은 자신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듣거나 자신들이 문화적으로 경향성을 지니고 있는 소리들과 관련하여 자신들이 듣는 것을 판단한다. 보다 오스트리아-독일 중심의 관점에서 말하는 Lawrence Kramer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그렇다, 음색 없는 음고나 셈여림intensity는 없는데, 음고나 셈여림 없는 음색도 없고, 리듬, 어택, 템포, 질감, 윤곽선 등등은 말할 것도 없다[이런 것들이 없는 음색이 없다는 사실은 너무 당연하다?]. 순전한 물질성이나 ‘좋은 울림의 감각’이라는 이름으로조차, 이상화를 위해 음색 하나만을 추려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Kramer 2014, 401)
다른 관점에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음악학자인 Peter Szendy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청취를 하고 있는 누군가를 청취할 수 있는가(Szendy 2008)? 그의 답은 우리가 편곡musical arrangement을 청취할 때는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의 베를리오즈의 편곡이 그러하다. Szendy는, 이 사례에서 우리가 베버를 청취하는 베를리오즈를 듣는다고 주장한다. 물론, 동일한 주장이, 대중적인 노래들의 커버 버전들을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편곡들로 확장될 수 있다(cover version 항목을 보라). 음악 그 자체를 청취하는 음악에 대한 연관된 생각은(그리고 Nancy에 관한 더 많은 고찰들을 보고 싶다면), Zbikowski 2013을 보라.
[8:2] 마지막으로, 청취는 – 항상 대놓고 선언되지는 못하더라도 – 음악 이론과 음악 분석의 중요한 요소이고, 수많은 중요한 음악-이론적 연구들은 인간의 인지와 지각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들로부터 외삽된 지점들을 갖는다(psychology 항목을 보라; Lewin 1986을 보라; Lerdahl과 Krumhanst 2007을 보라; Temperley 2001, 2007을 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