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1] 오디오 매시업과 리믹스1에 대한 비판적 평가들은 두 극단으로 모이는 경향이 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레코딩된2 음악의 똑똑한 재-조합들은 단조로운 상업 문화의 물질 속에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개입으로서 찬양된다. 다른 한편, 매시업과 리믹스는 종종 파생적이고 진정성이 없으며 또 불법적인 것으로 매도된다. 왜냐하면 매시업과 리믹스는 다른 사람들의 지적 재산을 전유하고appropriate 또 변용한reconfigure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는 어느 한 입장으로 치우쳐져 [한쪽 만을 지지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이러한 두 상반된 입장들을 우선 가능하게 만드는 공통적인 이해와 근본적인 가정들을 식별하고 또 비판한다. 이 문제에 대한 탐구는 두 주된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된 재생산/복제reproduction와 그러한 재생산이 원본성originality3이라는 개념에 쏟아 넣는invest in 종종 질문되지 않는 가치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를 고찰할 것이다. 이 고찰은 다소 예상 밖의 원천인, 플라톤의 『파이드로스』 - 사운드 레코딩에 대한 이론과 실천에서 재생산되고 또 이론과 실천을 결정하는 원본성의 최초 개념을 명료화한 대화편 – 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이 에세이의 두번째 부분은, 원본성에 대한 최초의 이해와 원본성의 특권에 대한 근본적인 반론을 발전시켜서, 오디오 매시업이 이 전통에 어떻게 의도적으로 개입하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이 논증을 하는 데 있어서, 이 에세이는 매시업을 무언가 고유하거나 혁신적인 것으로서 위치시키려고 노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이 에세이는, 자신의 완전하게 파생적인 본성에 충실하게, 매시업이 녹음된 음악을 구성하고 또 녹음된 음악에서 이미 이용가능한 변칙들을anomalies 어떻게 약탈하고plunder 재사용하며 또 리믹스하는지를 보일 것이다.
[489:2] 리믹스가 아닌 레코드는 오늘날 변형물anomaly이다. 리믹스는 디지털적인 것의 본성이다. 오늘날, 끊임없고 재조합되며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과정은 창의적 산물의 무수한 시간의 창의적 산물을 발생시킨다(또다른 케케묵은 용어?) … 재조합된 것(부틀렉, 리믹스, 매시업)은 우리의 두 세기의 전회에서의 특징적인 축이 되어 왔다 (Gibson 118)
[489:3] 오디오 매시업이 대중음악 내에서 상대적으로 새로운 발전이라고 하더라도, 오디오 매시업의 문화적 역사는 이미 결정되고 프로그램되었으며 규정되어 있던 것처럼 보인다. 이 역사의 서사적 궤적은, 팝 음악(재즈, 로큰롤, 펑크, 랩, P2P 등등)에서의 대부분의 혁신을 위해 쓰여진 궤적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잘 알려진 길을 좇는다. 이러한 서사들은, 옛날 옛적에 주로 현재의 상황에 도전하려는 혁명적인 언더그라운드 운동이 있었다, 는 식으로 읽힌다. 매시업 – 둘 혹은 그 이상의 오디오 레코딩들의 융합fusion과 불법적인 전용에 의해 창작된 사생아적bastard 예술 형식 – 은 명백히 문화 산업에서의 권위에 대한 불법적이고, 고의적인 전복이자 대중음악의 바로 그 질료material에서의 비판적 개입이다. 그 이야기의 이 부분은 항상 그리고 당당하게unapologetically 민주적인 이상들과 혁명적인 정치가들과 유토피아적 가장(하기)들의pretension 의문시되지 않은 유효성으로 가득 찬다: 사람들은 다국적 기업의 헤게모니에 효율적으로 도전하거나 그 헤게모니를 피해가고, 매스 미디어 콘텐츠의 수동적인 소비자는 독창적inventive이게 되고 더 나아가 능동적인 생산자가 되며, 단조로운 상업 문화는 새롭고 상상할 수 없는 목표들을 위해 변경repurpose된다. 예를 들어, “매시업 혁명”(Cruger)의 정점apex에 있다고 관례적으로 고찰되는 것은, DJ Danger Mouse(a.k.a. Brian Burton)의 『The Grey Album』(2004)4인데, [이 앨범은] Jay-Z의 『The Black Album』(2003)으로부터 추출된 랩 가사와 “고전적 록”의 논쟁의 여지 없는 고전 중 하나인 the Beatles의 1968년 앨범 『The White Album』으로부터 약탈된plundered 음악의 연쇄이다. 이 예상 밖의 조합의 결과는 혁명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이를 테면, Cruger와 Gunderson을 보라). 그리고 그 조합의 영향력impact은, 소위 EMI로 불리는, 현존하는 지적 재산권 법을 즉각적으로 동원했고 또 오늘날 유명한 정지명령 서신을 발행했던 확립된 질서의 반응을 고찰하는 것을 통해 쉽게 측정될 수 있다. 이 기업적 백래시에 대한 반응에서, 170개의 웹사이트들은 “회색 화요일”5이라고 이름 붙여진 공동의 온라인 시위에 참여했는데, 이 시위에서는 매시업의 mp3 복제들이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배포되었다.
[490:1] 그러나 이내 상황이 변한다. 처음에 그리고 다소 성공적이지 않게 그 관행을 끝내려고 시도했던, 전통적인 유력 인사들power-broker은 이제 혁명에 공조하고co-opt 또 그 혁신이 자신들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변형한다. 그 과정에서, 매시업과 같은 “혁명적인 예술 형식”은 길들여지고domesticated 재투자된다reinvested. 그것이[매시업?] 배치했을지도 모르는 비판적 개입들이 무엇이건 간에, 그 개입들은 그것이 전복시키고자 했던 체계를 위해 봉사하도록 만들어지고, 또 불법적인 언더그라운드 운동이었던 것은 재포장되고 변경되고 합법적인 기업의 상품으로서 팔린다. 만약 매시업 혁명의 정점이 『The Grey Album』이라면, 그것의 상업화commodification와 재전유reappropriation는 즉각적으로 뒤따를 것이고 또, 누군가 “역설적”이라고 말할 법하게, 래퍼 Jay-Z를 포함할 것이다. 『The Grey Album』의 출현과 뒤따른 논쟁적인 지적 재산권 분쟁들 이후, MTV는 그 전체 콘셉트를 약탈했고 또 재포장했다. MTV Ultimate Mash-up Presents: 『Collision Course』6라는 다소 서투른ham-fisted 제목 하에서, Jay-Z의 가사는 Linkin Park의 음악 위에 겹쳐졌다. 그러나 『The Grey Album』과는 다르게, 이 재조합은 예술가들과 레코드 회사들 모두에게 축복을 가져다주었다. 상당한 상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그 CD[Jay-Z + Linkin Park]는 발매 1주일 후 빌보드 차트 1위를 했다), 많은 비평가들은 이 “공인된” 버전을 그리 흥미롭게 여기지 않았다. 몇 달 후, (자동차 회사 Audi와 함께) David Bowie가, Bowie 자신을 재료로 삼는 매시업 콘테스트를 후원하면서, 리믹스에 뛰어들었다; Bowie는 최종 산물에 대한 모든 권리를 얻었고, 우승자인 David Choi는 자신의 노력의 보상으로 Audi TT Coupe를 받았다. 그리고 2005년 1월, 『Wired』 매거진은, Madonna와 Sex Pistols의 곡을 섞고 그 두 음악가에게 공인받은 “Ray of Gob”이라는 제목의 매시업을 다룬 기사에서, “매시업이 주류가 되고 있다”라는 선언을 한다(Orlove 72). 그 이래로, Vidler의 창작들은 HBO TV 시리즈인 《Entourage》(시즌 3, 에피소드 28)에 삽입되고 또 EMI 레코드를 통해 2007년 『Mashed』라는 제목으로 최초의 “합법적인” 매시업 CD로 공식적으로 발매되었다(『The Grey Album』을 고소하려고 했던 바로 그 회사이다).
[491:1] 이때까지 이러한 역사들은 일종의 “실락원paradise lost”적인 느낌을 가지고, 비평가들은 혁명이 그 초기의 자극적임bite를 잃었고, 그 혁신은 다소 진부해졌으며trite, 그 실천은 그저 다른 단기적인 팝-문화 트렌드로 전락할 위험을 갖는다고 비탄한다lament. 우리는 이 이야기의 윤곽들도 이미 너무 잘 안다. 이는 정치적인 혹은 문화적인 혹은 예술적인 모든 혁명적인 혁신들에 부과되는 서사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영역에서 활동하는 한operate on[?], 우리는 이미 무엇이 가능한지, 어떤 질문들이 물어질 수 있는지, 어떤 결과들이 적절한지를 안다. 매시업의 옹호자와 비판자 모두 이 서사 구조를 어떤 한 방식으로 혹은 다른 한 방식으로 자신의 설명에 맞춘다. 옹호자는 기업의 전유에 대해 불평하고 또 “더 원본적이고 진정성 있는” 과거를 허황되게fondly 회고하는 반면, 비판자는 이 혁신이 어떻게 결코 새로운 무언가가 아닌지를 지적하고 또 [매시업이] 확립된 질서 내에서 쉽게 위치될 수 있는지를 지적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전유와 관계가 없다; 나는, 문제가 [그러한] 서사 그 자체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사실, 문제는 이러한 서사 구조의 시행과 더 크고 더 은밀히 퍼지는 선거의 현장인 원본성과 진정성에의 이러한 서사 구조의 형이상학적 투자이다[??]. 만약 우리가 매시업과 매시업의 문화적 의의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새롭게 생각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이 서사와 이 서사의 형이상학적이고 가치론적인axiological 가정들에 의해 우리의 사유에 이미 부과되어 있는 전통적인 배치configuration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우리는 매시업을, 좋든 싫든, 레코딩 기술에 대한 우리의 기대들과 이해를 이미 구조화한 원본성과 진정성이라는 바로 그 개념들에서의 비판적 개입과 근본적 재변용reconfiguration으로서, 듣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레코드의 경우: 레코딩에 대한 본래의 형이상학
[491:2] 대부분의 사람들은,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와 『일곱째 편지』에서 글쓰기에 대해 제기된 반론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반론이 오늘날 컴퓨터에 대해 흔히 제기된다는 것을 알고서는, 놀라고 또 괴로워한다. (Ong 79)
[491:3-493] 레코딩 기술에 대한 최초의 기록된recorded 설명으로 간주되는 것 - 플라톤의 『파이드로스』 - 이 무엇인지에서부터 시작해보자. 『파이드로스』는 종종 수사학rhetoric과 말하기의 기술art에 대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파이드로스』는, 맨 처음부터, 기록/레코딩과 기억recollection 그리고 재생산의 기술technology과 기법technique에 관한 대화편이다. 『파이드로스』는 [인물] 파이드로스가 소크라테스를 자리에서 꿰어내려고 계속 시도하는 것에 관한 책으로부터 시작한다.
소크라테스: 탁월한 이여, 나를 이해해 주시게. 내가 배움을 좋아해서 그런 거니까. 시골과 나무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가르치려 들지 않지만,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안 그렇거든. 보아하니, 그런데도 자네는 내 일탈의 약7을 찾아낸 것 같군. 여린 가지나 무슨 열매를 내저어 굶주린 가축들을 이끄는 사람들처럼, 자네는 나에게 책자에 든 이야기를 그처럼 내밀어 모든 아티케 지역과 자네가 원하는 다른 어떤 곳으로든 이끌고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니 말이지. 그런데 이제는 현재 여기에 와 있으니 난 누울 생각이고, 자넨 읽기에 가장 편하다고 생각하는 자세를 취하고 읽어 주게.” (플라톤, 『파이드로스』, 230d-e)8
이 대화의 도입부에서, 파이드로스는 소크라테스가 어떤 책에 관심을 갖게 하고, 담화의 열성자인 소크라테스는 그 책을 손에 넣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그 책을 얻기 위해] 심지어 자신이 사랑하는 도시의 벽을 떠나 그가 “나쁜 이웃 동네” 라고 생각하는 곳으로 모험을 떠나려고 한다. 문제가 되는 그 책은 잘 알려진 웅변가 리시아스Lysias에 의해 발표된delivered 연설speech의 원고인데, 그 웅변 당일날 참석하지 못했던 소크라테스는 그 웅변에서 무엇이 말해졌는지what had been said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만이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 기록되고 읽기를 통해 재생산되는 것으로서의 “실제 담화”에 대한 접근을 간절히 바란다(플라톤, 『파이드로스』 228e). 그러므로, 『파이드로스』의 도입부에서, 글쓰기는 연설을 기록하는 수단이자 그 연설의 원래 발표의 시간보다 더 미래의 시점에 다른 장소place에서 그 연설을 재생산하는 수단으로서 위치지어진다be situated as. 이 특별한 이해는 결국 그 대화편의 마지막에서 논의되는데, 여기서 소크라테스와 파이드로스는 명시적으로 (글)쓰기의 기술 혹은 te´xng[?]를 탐구한다. 그 검토는 소크라테스가 이집트의 두 신인 발명의 신 토트Thoth(Theuth)와 신들의 왕 아몬Ammon(Thamus)에 관해 들었던 이야기를 되새기는recount 것으로 시작하여9, Jacques Derrida와 Neil Postman과 같은 여러 이론가들에 따라서, 검토는 서구 전통을 구성해 온 글쓰기에 대한 유명한 비판indictment으로 결론을 맺는다.
소크라테스: 파이드로스, 글쓰기가 이런 기이한 점이 있어서, 정말로 그림 그리기와 닮았다는 거지. 그래서 그림 그리기의 소산 역시 살아 있는 듯이 서 있으나, 자네가 무언가를 묻는다면, 그것은 아주 격조 있게 침묵을 지킬 것이란 말일세. 이야기들도 똑같다네. 한편으로는 그것들이 뭔가를 깊이 사리 분별해서 이야기하는 듯이 자네에게는 보였을 수 있지만, 배우고 싶은 마음에서 자네가 이야기된 것들 중 어떤 것에 대해 묻는다면, 그것은 언제나 한 가지의 같은 것만을 가리키지. 일단 글로 쓰이면, 모든 이야기는 전혀 격에 맞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나 똑같이 아무 데나 돌아다니며, 누구에게는 이야기하고 누구에게는 하지 말아야 할지를 모른다네. 한편 그것이 잘못 연주되거나10 부당하게 욕을 먹게 되면, 아버지11의 도움이 늘 필요하다네. 그것은 스스로 방어할 수도, 자신을 도울 수도 없기 때문이네. (플라톤, 『파이드로스』, 275d-e)
이 정식화는 우리가 (글)쓰기를 특별하게 이해하고 기록/레코딩 기술을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많은 결론들을 갖는다. 첫째, 기록/레코딩 기술로서의, (글)쓰기는 시간적 연쇄temporal sequence와 시간적 상태에 있어서 이차적이다. 쓰여진 기록은, 소크라테스적 설명에 따르면, 원래의 발화된 수행 이후에 오고 또 그 수행으로부터 파생된다. 이 방식으로, (글)쓰기는 그것이 파생되고 또 그것이 지칭하고 따르는defer to 다른 무언가의 대용물proxy로서 위치지어진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이 차이를, 어떤 면에서는in a manner of speaking, 삶과 죽음의 문제라는 은유를 활용함으로써, 표현한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고 플라톤이 전하길, 발화speech는 살아있는 화자의 숨결에 의해 활기를 띄는animated 한 살아있다alive; 반면, 인공적이고 외재적인 장치를 이용하는, (글)쓰기는 죽어있고 생명력이 없다(『파이드로스』, 276a). 혹은 Derrida가 신화적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그것을 간략하게 요약했듯이, “(글)쓰기의 신은 죽음의 신이어야만 한다… [글쓰기는] 살아있는 목소리의 숨쉬지 않는 기호를 대체한다”(Dissemination 91). 이 특정한 개념화는 또한, 그것이 명시적으로 그러한 것과 동일한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레코딩 기술, 특히 축음기 이후의 형식들에 대한 이해와 평가를 결정한다. 영어 단어 “record”는 부정사 “to record”로부터 비롯되고, 이 단어는 왁스 실린더나 바이닐 디스크의 표면에 기입된be inscribed on 것이 어떤 원래의 청각적 사건audio event의 기록본transcription이라는 인상을 준다. James Lastra는 “이 설명에 따르면, 축음기는 (그 장치를 위해 계획되었음에도staged for) 완전히 자율적인 소리 사건들sonic events을 기록한다. 개념적으로notionally, 이 사건들은 축음기가 존재하지 않았을 경우와 완전히 동일한 방식으로 발생했을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축음기는 어떠한 방식으로건 그 사건에 ‘침투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 사건의 외부에서 그 사건을 복제duplicate하려고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라고 쓴다(85).
[493:1] 외적이고 이차적인 것으로서 축음기적 재생산을 이해하는 것은 녹음된 소리의 역사에 스며들어서, 전문적인 실천들과 이론화 그리고 심지어 공통된 이해까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그것은 축음기에 관한 Thomas Edison의 초기 저작들에 배치되고 또 대중화된다. Edison에 따르면, 이 장치는 “지금까지는 ‘순간적인fugitive’ 것으로서 지명된designated 모든 종류의 음파sound wave의 구금captivity과 그 음파들의 영구적인 잔류retention”를 촉진했다(528). Edison에게 있어서, 축음기는 청각적 도큐멘테이션의 장치로서 이해되었고 또 홍보되었다. 그것은[축음기는], 축자적으로, 원래의 소리들을 포착하고 기록하며 저장하기 위한 레코딩 기술이었다. 이 이해는 동시대의 실천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하며, 또 이 이해는 특히 Milli Vanilli 스캔들12과 같은 위기의 순간들에서 명백해진다. 1990년, 팝 듀오 Milli Vanilli는 1989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 상은 두 명의 “레코딩 아티스트들”이 시상의 대상인 레코드에 들어 있는 그 음악을 실제로 실연perform하지13 않았다는 게 드러나게 되어 취소되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대중음악에서 [오늘날] 드물지 않은, 이 실천은 스캔들이 되었는데, 왜냐하면 레코드가 음악가의 실연/연주를 기록한다고, 또 궁극적 가치와 중요성을 갖는 것은 원래의 실연/연주(기호학으로부터 빌려온 표현을 쓰자면, “지시체”)이지 그것의 기록된 재현(물)이 아니라고, 대중과 NARAS(그래미 시상식의 후원 기관)에 의해 가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이드로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의 차이는 생물학적 용어들을 활용하여 표현된다. “라이브” 실연/연주는 일반적으로 기록된 재생산reproduction과 구분되며, 이 설명에 따르면, [레코딩은] 이차적이고 파생적이며 생명력이 없다고 가정되는, 기록된 재생산에 관한 선호preference로 제시된다. Philip Auslander가 주장하듯, “공통된 가정은 라이브 사건은 ‘실재적real’이라는 것이며 또 종속된mediatized 사건들은 이차적이고 어떻게든 실재적인 것의 인공적인 재생산이라는 것이다”(3).
[493:2] 둘째로, 외재적이고 활기가 없으며inanimate 인공적인 재생산으로서, 글쓰기는 발화의 원래적 전달의 시간과 장소 이후와 그 너머까지 발화speech를 보존preserve할 수 있다. 이는 이점이자 문제점이다. 이는 레코딩이 본질적으로 일시적이고transitory 수명이 짧은ephemeral 무언가의 불변하고inalterable 영구적인 기록document을 제공하는 한에서 이롭다. 이 점이 바로 소크라테스에게 책을 그렇게 매력적이게끔 만든 것이다 – 즉, 그 책은 리시아스의 연설을 기록하고 저장한다. 이는 축음기를 통한 기록phonographic record에 대해서도 참인데, 이 기록은 단지 언어word만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의 특정한 억양inflection, 음색, 리듬도 기록한다. Jonathan Sterne에 따르면, “사운드 레코딩의 대중적 도입의 순간으로부터, 사운드 레코딩은 기록 매체archival medium으로서의 큰 가능성들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소리를 미래까지 무기한으로 보존할 수 있는 사운드 레코딩의 잠재성은 사용자들과 홍보담당자publicist 모두에 의해 즉각적으로 파악되었다”(288). 그리고 또다시, 이 모든 것은 삶과 죽음의 문제로 귀결된다. Sterne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만약 사운드 레코딩에 대한 초기의 설명들에서 본질적인 의미를 규정하는 특징figure이 존재했다면, 그것은 화자의 죽음을 넘어서는 목소리의 보존 가능성이었을 것이다” (287). 정말로, 이는 아마도 Victor Talking Machine Company의 트레이드마크인14, 축음기적 재생산에 대한 가장 잘 알려진 이미지에서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 잘 알려진 이미지는 Nipper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그의 주인의 목소리”의 레코딩을 들으면서 그라모폰의 관 앞에 순종적으로 앉아있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 트레이드마크의 초기 버전15에서, Sterne(302)가 지적하듯, 축음기와 강아지는 동시대인들이 흔히 관뚜껑으로 추정했던 빛나는 표면 위에 있다. 이러한 이유로, Friedrich Kittler(69)와 같은 이론가들은 Nipper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 그의 “죽은 주인의 목소리”의 소리라는 가정을 하는데, 이 “죽은 주인의 목소리”는 이제 축음기 디스크의 홈이 파여진 표면에 영구적으로 보존되어 있다.
[494:1] 레코딩들은 라이브 퍼포먼스16와 구분되어야만 하는 생기 없는 파생물들derivatives이지만, 레코딩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포머의 죽음 이후까지 일시적인 발화를 보존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영속성permanence은 또한, 어떤 라이브 사건의 보존과 석회화[박제?]calcification로서의 레코딩이 새로운 어떠한 것을 결코 말할 수 없다거나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고 고찰될 수 있다. 레코딩은 실수에 대해서도 반복적이고 잉여적redundant이다. 글쓰기에 관해 소크라테스가 말했듯, “당신은 그것들[글들]이 마치 자신들이 지성을 가진 것처럼 말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만약 당신이 그것들[글들]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그것들은 항상 단 하나의 그리고 동일한 것만을 말할 것이다.” (플라톤, 『파이드로스』 275d). 그러한 반복적임repetitiveness은 사운드 레코딩에서의 우려의 원인cause for concern이 된다. 작곡가 Roger Session은 다음과 같이 쓴다:
음악은 더 이상 우리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우리가 축자적인 반복의 사실, 즉 기계적인 재생산의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instant, 다시 말해 우리가 정확하게 어떻게 주어진 악절phrase이 본떠질 것인지, 주어진 페르마타가 얼만큼의 길이로 유지될 것인지, 엑센트이나 아티큘레이션, 아첼레, 리타르단도의 정확히 어떤 특질이 주어진 순간에 발생할 것인지를 알고 또 예측할 수 있을 때. [이런 것들을 다 알게 되는 순간, 음악에 대한 흥미가 더 이상 없게 된다?] (Sessions 70)
Sessions에게 있어서, 레코딩은, 살아 있고 또 즉흥적인 퍼포먼스를 반복적이고 프로그램되었으며 완전히 예측가능한 무언가로 바꾼다는 점에서, 음악을 망친다. Theodor Adorno는 이러한 비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대중 음악의 본질essence은 그것의 레코딩만이 아니라 반복이라고 주장한다. Adorno의 분석에 따르면, “[그가 진지한 클래식 (그리고 “유럽의”라는 말을 덧붙여야만 하는) 작품들과 대비시켰던] 대중음악의 근본적인 특징은 표준화standardization”이다 (17). 이 설명에 따르면, 대중적인 노래들은, 마치 다른 산업의 산물처럼, 반복가능하고 상호교환가능한interchangeable 표준적인 조립식prefabricated 요소들로 조립된다assembled. Adorno가 주장하듯, 그 결과는 유감스럽게도 “융통성 없고rigid 기계적인” 음악 형식이다 (19).
[494:2] 셋째로, 레코딩들은,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잡다한 사생아promiscuous bastard이다. 소크라테스가 기술했듯, [글로] 쓰여진 언어는 그것의 아버지로부터 떨어뜨려진 사생아illegitimate offspring이다(플라톤, 『파이드로스』, 276a). Derrida가 그것을 특징지었듯, “글쓰기는 불쌍한 자식이다. 소크라테스의 어조는 때로는 단정적categorical이고 비난적이고 – 부모 말을 안듣고 반항적인 자식을 비난하고denouncing, 무례하고 변태적인 아들을 비난하면서 – 때로는 감동적이고 저자세이다 –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아들이라는 무방비의 생물을 동정하면서.” (Dissemination 145). 그리고 그것의 창시자progenitor에 의해 버림받고 또 분리되어짐으로써, 글쓰기는 불가피하게 고찰할만한 남용abuse과 오용misuse에 노출된다. 그것은[글쓰기는] “누구에게 말할지 혹은 말하지 않을지를 알지 못한다.” (플라톤, 『파이드로스』, 275e). 이 때문에, 글쓰기는, 그것의 적절한 사용을 허가하고authorize 또 그것의 적절한 이해를 보장하기 위해 그것의 부재하는 아버지의 보호를 항상 필요로 한다고, 소크라테스는 주장한다. 동일한 개념화, 은유, 그리고 걱정이 오디오 레코딩의 역사에서도 발생하고 또 눈에 띈다. Edison에 따르면, 축음기는 “원전의 현존presence이나 허락consent 없이도” [원래의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에 원래의 청음audition의 반복을 가능하게 한다 (528). Edison은 이것이 상당한 이점이 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음악 산업은 소크라테스와 비슷하게 그것이 그저 문제일 뿐임을 발견했다. 사실, 앤여왕법Statute of (Eight) Anne17을 가진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시작된 저작권법에 대한 최근의 발전은 이러한 우려에 의해 동기부여된다. Dan Hunter와 Gregory Lastowka에 의하면 “주로 레코딩 행위와 또 이에 평행하게collaterally 예술적 창의성에 대한 것인” (968), 저작권은 기록된 자료의 적절한 사용을 명료화하고 동일한 것[기록된 자료]의 부적절한 적용을 구성하는 것을 설명하는delineate 규정stipulation들을 포함한다. 이는 자신의 창의적 산물에 대해 적법한 저자의 재산권과 도덕적 권위를 단언하기 위해 이루어진다고 주장된다. 플라톤의 은유를 다시 활용하자면, 그것은 아버지임paternity의 문제이다(Derrida, Dissemination, 75 – 84). 저작권 위반 범죄를 담당하는, 미국의 FBI는 미국 법의 보호 하에 놓이는 레코딩들의 사용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성문 조항을 제시한다: “경고: 본 저작물에 대하여 허락되지 않은 재생산 혹은 배포는 불법입니다. 저작권 침해 범죄는 금전 취득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FBI의 조사를 받게 되며 5년 이상의 연방 교도소 수감 또는 미화 25만 불 이상의 금고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문학 및 미술 저작물 보호에 관한 국제 협정’을 위한 베른 조약Berne Convention18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재생산과 번역과 퍼포먼스와 각색에 관하여 저자의 국제적인 재산권을 보장한다. 이것들 모두, 명시적으로 인정되건 아니건 간에, 플라톤적 형이상학과 글쓰기에 대한 소크라테스적 평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왜냐하면 레코딩은, [글로] 쓰여진 기록물과 비슷하게, 그 자신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아버지임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고 자신의 자손progeny을 오용과 남용으로부터 보호할 저자의 권위를 인정할 방법이 무언가 필요하다.
[495:1] 그러므로, 『파이드로스』는 레코딩 기술에 대한 구체적이고 영향력 있는 이해를 기록한 대화편이다. 복제와 복제 가능성에 관한 유사한 결정들이 서구 사상사 전반에서 눈에 띄게 정기적으로 되풀이된다(누군가는 [이를 “되풀이된다”가 아니라] “복제된다”라고 말하고 싶어할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이는 Walter Benjamin의 영향력 있는 에세이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표명된다. Benjamin에 의하면, 사진과 축음기와 필름[영화]라는 새로운 기술들을 통해 예화되었던 기술 복제에서의 진보는 원본 예술 작품의 기계적manufacturing 복제를 위한 전례 없는 수단을 제공했다. 플라톤의 텍스트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Benjamin은 『파이드로스』의 모든 국면들을 재전개redeploy하는 것처럼 보인다. Benjamin은 “심지어 예술 작품의 가장 완벽한 복제조차도, 한 요소만큼은 결여한다: 바로 그것의[그 작품의] 시공간에서의 현존이다. 즉, 그 작품이 발생하는 장소에서의 그 작품의 고유한 존재이다… 원본original의 현존은 진정성authenticity이라는 개념의 전제조건이다” (220). Benjamin은 (“숨결breath”이나 “공기air”를 보다 적절하게 지명하는) “아우라aura”라는 라틴어 단어를 이러한 고유한 현존과 진정성을 기술하는 데 적용하고, 또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전개한다: “기술 복제 시대에 약해지는 것은 바로 예술 작품의 아우라이다. 이는 예술이라는 영역을 넘어서는 중대한 의미를 가진 증상적 과정이다” (221).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사진과 축음기와 필름의 메커니즘들은 살아있는/살아숨쉬는 원본의 시공간으로부터 잘라내어진 복제물들을 창조하고 또 파생되고 생명력이 없고 본질적으로 진정성이 없는 대상들을 구성한다. 『파이드로스』와 2000년이 넘게 차이가 나지만, Benjamin의 에세이는 플라톤에 의해 처음 전개되었던 분석들과 결단들을 재생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진술을 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분석은 탐구 중인 플라톤적 구조의 모든 국면과 조항에 합치한다. 즉, 플라톤의 텍스트는 레코딩 기술에 대한 최초의 이해로 고려되는 것을 도입하고, 뒤따르는 표명들[벤야민의 분석이나 데리다의 분석…]은 플라톤적 프로토타입으로부터 파생되고 그것에 이차적인 복제물들을 염두에 둔다be determined to. 이러한 통찰은 반드시 그러한 분석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니고, 매우 실용적인 의미에서, “원본”의 권위와 지위에 대한 특정한 가정들이 우리의 사유thinking를 미리 결정하고, 또 그 가정들이 당연하게 간주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매시업과 리믹스: 재조합된 로큰롤의 예술
[496:인용문] 진짜 돌파구는, 수적인 영역에서, 원본 소리의 유사체analog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나중에 산출하는, “녹음된” 소리를 표상하는 데이터가 데이터로서 조작될 때 도래할 것이다.(Rothenbuhler & Peters 247)
[496:1] 매시업은 레코딩에 대한 원래의, 플라톤적 이해에 개입하고 또 그 이해를 조작한다. 특히, 매시업은 『파이드로스』에서 제시되는 소크라테스적 설명에 의해 동원되고 또 그 설명 안에 배치되어 있는 모든 국면을 목표로 삼으면서도 그 국면을 약화시키도록 작동한다. 첫째, 매시업들은 원본origin과 원본성originality에 대한 공통의 가정들을 복잡하게 만들고 또 유예시킨다suspend. 이는, 예를 들면, 매시업의 계보학을 명료화하려는 최근의 시도들은 명백히 양립불가능한 수많은 설명들과 가계들lineages을 야기해왔다는 사실에서 분명하다. 가장 유명한 매시업 아티스트 중 하나인, Mark Vidler는 트랙 “A stroke of genius”19를 그 관행[매시업]의 시작으로 규정한다(Rowley). Roy Kerr(aka Freelance Hellraiser)에 의해 2001년에 합성된 이 곡은 Christina Aguilera의 “Genie in a Bottle”에서의 보컬을 밴드 the Strokes의 “Hard to Explain”과 합친 것이다. 그러나 Kerr은 이러한 종류의 소리적 재조합sonic recombination을 시도한 최초가 아니었다. [매시업의] 기원에 대한 다른, 서로 경쟁하는 설명들이 존재한다. Kembrew McLeod는 매시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넓게는 “모더니스트 콜라주 미학”(81)과 좁게는 Pierre Schaeffer의 구체 음악까지로 추적해간다. 그는 또한, “비틀즈의 곡 ‘Norwegian Wood’의 보컬 멜로디를 드라마 <미션 임파서블>의 주제가 위에 퐁당 넣어 놓은plop”, Alan Copeland의 1968년 트랙인 “Mission: Impossible Theme/Norwegian Wood”20[20]를 팝 음악에서 이러한 종류의 “외(과)적인 접합surgical grafting”의 최초의 사례들 중 하나로 규정한다(85). 그러나, William J. Levay는 매시업이 정말로 리믹싱, 즉 1960년대 초 자메이카에서 도입된 턴테이블 관습의 연장이자 그 연장과 함께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Levay에 따르면, “버저닝versioning” 혹은 “dub”21이라고 불리우는, 이 관습은 디지털 리믹싱에 대한 아날로그적 선구자를 구성한다. Eric Davis는 프로듀서 Lee “Scratch” Perry라는 자신의 프로필을 설명하면서, “덥 음악은 기계의 순수한 인공적 산물이고, 또 덥 음악은 세계earth이나 육체flesh나 진정성과 거의 관련이 없다. 덥 음악을 만들기 위해, 프로듀서와 엔지니어는 – 디지털과 반대되는 -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녹음된 이미 존재하는 트랙들을 조작한다.”라고 말한다. Will Hermes와 Roberta Cruger와 같은 다른 연구자들은, 매시업과 오디오 샘플링의 발전과 Evolution Control Committee와 John Oswald의 플런더포닉스22의 실험적인 사운드 아트 사이의 연관성들을 추적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고찰되면, 매시업은 “음악적 인용musical quotation”에서의 가장 최신의 발전, 즉 음악사를 통틀어도 명백하고 아날로그와 디지털 레코딩 기술 모두보다 앞선 관습으로서 위치될 수 있다. Kevin Holm-Hudson은 “음악적 의사소통의 모든 성공적 사례에는 – 축자적인literal [의미의] 인용을 통해서건(이를 테면, 존재하는 멜로디를 인용하기) 혹은 일반화된 전용appropriation(예를 들면, 스테레오타입화된 음악적 양식을 언급하기)을 통해서건 - 차용하기borrowing의 요소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17). 그리고 『Wired』 매거진은 2005년 7월 호에서, 이 모든 실천들을 “복붙 문화Cut and Paste Culture”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 큰 사회 운동의 맥락 안으로 그러모아, 이러한 모든 관습들을 연결하고 또 경계 짓는circumscribe 것을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최초의 매시업”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내려 하거나 그 관습의 고유한 기원을 식별해내려는 노력들은, 어떤 특정한 매체나 기술이 포함되었건 상관없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또 종종 환원불가능한 채로 남겨지는 논쟁적인 설명들을 촉발시켰다. 이는 단지 경험적 탐구나 이용가능한 데이터에 대한 문제들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기원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과 진정성에 부여된 상정된 가치와 발생학에 대한 모든 설명들에 부과되는 서사적 구조에 대한 매시업의 근본적 도전의 산물이다.
[497:1] 축음기적 레코드에 대한 본질적으로 플라톤적인 Edison의 가정들에 반하여, 매시업은 원본의 청각적 사건을 복사하거나 재생산하지 않는다. 『파이드로스』에서 나오는 그 책과 다르게, 매시업은 어떤 원본의 혹은 선행 연주의 기술 복제technological reproduction에 달려 있지 않다. 그 대신, 매시업들은 복제물로부터 복제물을 생산한다. 예를 들어, Mark Vidler의 트랙 “Ray of Gob”에서, Madonna의 노래 “Ray of Light”의 보컬은 그 원곡[“Ray of Light”]의 디스코 인스트루멘탈 트랙으로부터 분리되어 의도적으로 거친abrasive 펑크 음악인 Sex Pistols의 트랙 “Pretty Vacant”와 “God Save the Queen”의 위에 중첩된다. 그 매시업 트랙[“Ray of Gob”]은 Sex Pistols의 트랙 “Pretty Vacant”의 유명한 아르페지오 기타 도입부와 행진곡 리듬으로 시작한다. “There’s no point in asking, you’ll get no reply”라는 가사로 된 유명한 으르렁거림과 함께 Johnny Rotten의 보컬이 믹스에 들어올 것을 청자가 기대하는 지점에서, 청자는 그 대신[원곡의 보컬 대신] “Zephyr in the sky at night I wonder”라고 노래하는 Madonna의 매우 세련되고 과하게 프로듀싱된 보컬을 듣는다. 이 특정한 곡은, Vidler가 『Keyboard』 매거진과의 2006년 인터뷰에서 묘사했던, 그의 일반적 접근법을 다음처럼 예화한다: “나는 장르 간의 충돌 이상을 선호한다. 나는 두 개의 다른 양식들로부터 소스들을 취하려고 노력하고, 그 소스들로부터 흥미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내려고 시도한다”(Preve 39). 매우 다르고 또 명백히 양립불가능한 이 두 요소들을 결합시키기 위해, Vidler는, 다른 매시업 예술가들처럼, 그 소스의 작곡적 요소들에 매우 주의를 기울이고 또 이해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소니 사의 Sound Forge23나 Digidesign 사의 ProTools24,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인 Audacity25와 같은 소프트웨어에서 이용가능한 디지털 오디오 프로세싱 툴들을 활용하는 것을 통해 그 소스들에 작은 변형alteration을 만드는 게 필연적임을 안다. Vidler에 따르면:
이는 내 즐거움의 대부분이다. 약간의 재배열이나 얼버무림과 함께 - 진행되어서는 안되지만 함께 진행될 수 있는 콤보들을 찾는 것 말이다. 나의 불문율은 만약 원래의 키나 템포를 너무 많이 손상시켜야만detract 한다면, 그것은 추구할만한 가치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약간의 음고-변화나 약간의 템포 올리기를 잘해낼 수 있다… “Ray of Gob”에서 Madonna의 보컬은 속도도 올려졌고 음고도 조정되었으나, Sex Pistols의 트랙들의 힘은 그러한 조정을 상대적으로 잘 가려주는 것처럼 보인다. (Preve 40)
Vidler의 디지털 데이터-다듬기의 결과는 단지 영리하게 원본 레코딩들의 가사적 내용과 멜로디를 결합할 뿐만이 아니라 Sex Pistols의 기타-중심의 펑크 음악과 Madonna의 유명한 보컬 전달 모두의 정확한 소리와 고유한 억양을 보존한다. 그러므로, Vidler의 매시업은 Sex Pistols의 것과 유사하게 소리나는 무언가를 노래하는 Madonna처럼 소리나는 게 아니다. 그의 매시업은, 설령 이러한 콜라보가 있었던 경우는 결코 없지만, Sex Pistols의 반주에 맞추어 실제로 노래하는 Madonna이다. 결과적으로, Vidler가 mp3 형식과 바이닐 디스크 모두로 배포했던, “Ray of Gob” 레코딩은 이전에 있었고 고유한 어떤 연주를 기록한 레코드documentary record가 아니다. 대신, 그것은[“Ray of Gob” 레코딩은], 엄밀하게 말해서, 그런 식으로 발생한 적이 결코 없던 한 연주를 시뮬레이트한다simulate. 이러한 방식으로, Vidler는 Sex Pistols가 Madonna를 위해 반주를 치도록accompany 만드는 게 가능할 뿐만 아니라, 『클래식 록』 매거진의 기사에서 Scott Rowley가 기술했듯, “Freddie Mercury가 AC/DC의 프론트맨이 되게 만들고, the Who의 보컬이 Kylie Minogue가 되게 만들 뿐만 아니라… Thin Lizzy26의 반주 위에 Beyonce가 노래하게 만들 수 있다.”
[498:1] Mark Vidler의 작품에서 예화된 것과 같은 이 구체적인 관행은, 고유하지도 않고 원본적이지도 않다. 즉, 우리는 동일한 것을 다른 어떤 매시업에 대해서건 쉽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DJ Danger Mouse는 『The Black Album』으로 대표되는 래퍼[Jay-Z]의 두드러지는 보컬 퍼포먼스를 보존하고 거기에 프로듀서 George Martin에 의해 레코딩된 John, Paul, George, 그리고 Ringo의 클래식 록 사운드를 더하여, Beatles의 음악과 Jay-Z의 가사들을 재조합하는 것을 통해 꽤나 큰 파문을 일으켰다. 예를 들어, 『The Grey Album』의 두번째 트랙에서, “What More Can I Say”에서의 Jay-Z의 명시적인 가사의 아카펠라 버전은 George Harrison의 트랙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의 피아노 중심의 도입부를 샘플링하고 반복시켜서 창작된 인스트루멘탈 트랙의 위에 중첩된다. 결과적으로, 모든 개별 매시업의 기술이나 요소들이나 결과들에 있어서 원본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그것은[매시업은] 그 중핵부터 파생적derivative이다. 예를 들어, Vidler의 작품에 고유하거나 원본적인 것이 하나라도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플라톤주의를 재도입하는 동시에 플라톤주의의 유산legacy에 의문을 제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매시업[작품] 혹은 하나의 매시업 “예술가”를 어떤 면에서건 특별하고 원본적이라고 식별하면서도, (일종의 수행적 모순performative contradiction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매시업이 원본성의 형이상학적 우선권과 일반적 형상form과 개별적 현상appearance 사이의 전통적인 플라톤적 구분을 문제시한다는 주장을 할 수 없다. 만약 하나의 매시업을 다른 매시업으로부터 구별하는 게 전적으로 가능하다면(이를 테면, “나쁜 매시업”으로부터 “좋은 매시업”을 구별해내는 것), 그 구별은 완전히 다른 미(학)적 공식에 근거해야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전통적인 플라톤적 구조를 활용하거나 이용하거나 그 구조에 의해 알려지지 않는 어떤 공식에 근거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포스트-플라톤적 미학에 적합한 작업을 하는 수많은 이론가들이 존재하지만, 매시업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사상가는 아마 Jean Baudrillard일 것이다. Baudrillard가 오디오와 사운드 재생산을 다루는 것을 피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시뮬라시옹”이라는 개념에 대한 그의 논의는 매시업과 매시업의 문화적 의의를 설명하기 위해 변경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기술을 제공한다. Baudrillard는 『시뮬라시옹』27에서, “시뮬라시옹은 더 이상 하나의 영토territory나 지칭적 존재[지칭 대상] 혹은 실체substance의 시뮬라시옹이 아니다. 시뮬라시옹은 원본 혹은 실재reality가 없는 실재a real, 즉 하이퍼리얼리티에 의한 발생이다.”28 시뮬라시옹에 대하여,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플라톤적 형이상학에 의해 정의되어 왔던 영토, 즉, 시뮬라크럼이라는 복제물이 그 복제물보다 선행하고 또 그것을 결정하는 원본으로부터 파생된 것이자 이차적인 것이라고 이해되는 영토 위에서 작동하고 있지 않다. Baudrillard에 따르면, 시뮬라시옹은 이 체계에 개입하여 그 게임의 규칙들을 급진적으로 바꾼다. “시뮬라크라로서, 이미지들은, 실재the real와 실재의 복제품의 인과적 순서와 논리적 순서를 뒤집는 정도까지 실재를 앞선다” (Baudrillard, Evil Demon 13)29. 이는 정확하게, Vidler의 “Ray of Gob”처럼, 매시업이 사운드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믹싱에 있어서, Sex Pistols의 음악에 Madonna의 보컬을 올린, 트랙 “Ray of Gob”은 게임의 [이미] 확립된 규칙들을 급진적으로 바꾸면서 레코딩의 [이미] 확립된 체계에 개입한다. 그리고 이 지점이 바로 Vidler 자신이 지적하듯 매시업을 흥미롭고 또 문화적으로 의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Baudrillard에 의해 기술된 대부분의 시각적 시뮬라크라와 마찬가지로, 매시업은 『파이드로스』 이래로 레코딩의 형이상학에서 작동해왔던 상정된 인과적인 순서와 논리적인 순서를 전복시키는 데 참여한다. 그러므로, 매시업은 다름 아닌 바로 시뮬라시옹의 소리이다.
[499:1] 둘째, 매시업들은 과도하게exceedingly 그리고 당당하게unapologetically 잉여적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매시업들은 회복recuperation의 전통적인 전략들을 넘어선 것처럼 보이는데, 놀랍지 않게도 이 모든 전략들은 플라톤적 원본을 활용하고 또 그것에 부합한다. 이를 테면, Lee Brown은 “레코딩에 의해 이용가능해진 디테일은 라이브적인 대상living thing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감상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통해, 재즈 레코드의 내재된 과잉과 반복성에 대한 정당한 사례를 만들고자 한다(124). 이 구체적인 논증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Brown은 단지 플라톤의 생물학적 은유와 “라이브 사건”에 관습적으로 준거해왔던 의심의 여지가 없는 특권을 동원할 뿐만 아니라, 모든 진지한 음악 작품들을 구성하는 “디테일들에 대한 고유한 삶의 관계”를 이상화하는, Adorno의 용법을 활용하기까지 한다. 비록 이러한 종류의 논증을 채택함으로써 매시업을 유효한 것으로 만들고validate 또 위치짓는 게 가능할 수도 있지만 – 즉, 매시업이 원본 음악에 대한 감상을 소생시키고reanimate 심지어 그것을[원본 음악?] 만든 예술가들과 소스들을 위한 새로운 시장들을 개척한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겠지만 – 매시업의 효과들은 정말로 그보다 훨씬 더 뚜렷하고 근본적이다. 하나의 레코딩된 팝송에서 보컬 트랙을 추출해내어 그 보컬 트랙을 다른 팝송으로부터 도출된 음악의 위에 중첩시키는 데 있어서, 매시업은 사전에 조립된prefabricated 재료들을 대체시키고 재구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로, 매시업은 Adorno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후렴[코러스]의 도입부는 무수히 많은 다른 후렴의 도입부로 대체가능하다. 요소들 간의 상호관계나 요소들과 전체와의 관계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베토벤 [음악]에 있어서, 위치는 구체적인 총체성과 그것의 구체적인 부분들 사이의 살아있는 관계 내에서만 중요하다. 대중음악에서, 위치는 절대적이다. 모든 디테일은 대체가능하다; 그것은[대중음악의 디테일?] 단지 기계에서의 하나의 톱니바퀴a cog 기능을 할 뿐이다. (Adorno 18)
매시업은 Adorno가 음악의 모든 대중적 형식들에 귀속시키는 이 기계적인 대체가능성과 복제의 극단적 형식을 구성한다. 정말로, 매시업 예술가들은, 마치 Adorno의 비난indictment이 매뉴얼인 것마냥, 의도적으로 하나의 후렴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또 전체의 원본적 온전함integrity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디테일들을 재조정하면서, Adorno의 비난을 변형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매시업은, Slavoj Zizek의 조언을 따르는 것처럼, “그것이 비난을 받는 것을 완전히 지지한다.” (Fragile Absolute 2)30 즉,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여전히 원본성을 그렇게 검증하고 가치 있게 만드는 논증들을 가지고 반복가능성과 상호교환가능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 대신, Mark Vidler의 “Ray of Gob”이나 Freelance Hellraiser의 “A Stroke of Genius”와 같은, 매시업들은 그러한 과잉를 재활용하고 재복제하며, 그 과잉을 그 극단까지 밀어붙이며, 끝내 (비록 “원본적인”이라는 말이 더 이상 완전하게 적절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반복적이고 본질적으로 상호교환가능한 요소들로부터 “원본적인” 무언가를 산출한다. 팝아트와 마찬가지로, 매시업은,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원본적”은 아닐지라도, 단지 닮음resemblance과 과잉으로 환원되는 데 저항하는, 매우 혁신적인 산물들을 (재)생산하기 위해 반복적인 산업적 실천의 모든 국면을 재활용하고 또 포괄한다comprehend. 그러므로, 매시업은, Gilles Deleuze가 이론화한 것과 유사하게(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고유한 원본의 원본적 플라톤적 특권화previleging를 단순하게 반복하고 재확인하지 않는 반복의 새로운 개념new concept of repetition을 도입하는 “반복”의 재변용reconfiguration에 참여한다. Deleuze의 분석이 레코딩된 음악의 개별성particularity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매시업에 대한 접근법으로서, Deleuze의 텍스트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을 도출하여 그 믹스에 더할 수 있다: “복사물에서 [또다른] 복사물로의 절하된 비슷함likeness의 무한한 움직임에서, 우리는 모든 것이 본성nature을 변화시키는 지점에, 또 복사물 그 자체는 시뮬라크라로 뒤집히는 지점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닮음이나 영적인 모방이 반복에 길을 내어주는 지점에 도달한다.”(Difference 129).
[500:1] 셋째, 매시업은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또 약화시킨다. 원래의 소크라테스적 평가에 따르면, 문자 언어들written words은, Derrida가 지적하듯, 부모의 권위로부터 본질적으로 잘라내어진 “고아”나 “사생아”로 특징지어진다. 소크라테스와 파이드로스가 후자의[?] 실제 현존을 넘어서 리시아스의 연설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뿐만 아니라, 소크라테스 자신이 그러하듯, 리시아스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거나 허가하지 않았던 것들을 그 언어들이 말하도록 만드는 그러한 방식으로 리시아스의 언어들을 잔뜩 밀어넣고jamming 리믹스하면서, 리시아스의 언어를 변경할 수 있다. 일단 한번 쓰여지면, 소크라테스가 지적하듯, 모든 언어가 “오르내릴 수 있다be bandied about”.31 유사하게, 매시업은 “사생아 팝bastard pop”으로 간주된다(Cruger; Newitz). 매시업은, “원본 예술가”의 적절한 권위와 통제력과 이해력을 의도적으로 초과하는, 레코딩된 음악의 난잡한promiscuous 재변용과 불법적인 융합의 괴물 같은 결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데 있어서, 매시업은 저자의 권위에 도전할 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에서의 저자성authorship이라는 개념이 그 자체로 항상 애매모호한 것이었고 또 인위적인 무언가였음을 설명한다. Jesse Walker가 지적하듯, “비평가들은 팝 레코드를 ‘창작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토론을 해왔다: 앨범 커버the sleeve에 기재되어 있는 예술가인가? 무대 뒤의 프로듀서인가? 작곡가인가? 아니면 그 음악을 실제로 연주하는 익명의 스튜디오 직원인가?”(57). 그러므로, 매시업은, 저자권이라는 개념이 항상 매시업 자신의 역사와 가정들과 정치적 관심사들을 갖는 구성construct이었다는 것을 활용하고 설명하는 만큼이나 그렇게 저자권을 위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을 하는 데 있어서, 매시업은 불가피하게 지적재산권법에 맞서고 또 위반한다. 매시업은 단지 공인받지 못한 것만이 아니다; 매시업은 의심의 여지없이 불법이다. Hunter와 Lastowka가 요약하듯, “저작권 소유자의 권리에는 이전 작품에서 파생된 작품들뿐만 아니라 이전 작품들의 일부를 포함하는 새로운 작품들을 금지하는 권리까지 포함된다.”(985 – 986). 타인의 지적 재산권을 재사용하고 변형하는 데 있어서, 매시업은 현존하는 저작권 법에 대한 분명한 위반이고 그래서 형사 고발과 민사 소송 모두에 노출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매시업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변호사의 정지 명령을 기피하고 있고” (Newitz; Hunter and Lastowka), 또 RIAA와 같은 사법 기관이나 산업 조직을 상대로 그 권한을 가진 기관들과 정교한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Jay-Z와 Linkin Park의 콜라보나 Vidler의 『Mashed CD』와 같은, 공인된 매시업의 최근 출현은 이러한 상황을 바꾸는 데 거의 혹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말로, 공인된 매시업은 종종, 『Mashed』의 보도자료가 기술하듯, “엄청난 정도의 허가 절차”(Vidler)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공인된 매시업에 대해서, 변호사들은 믹스에 들어가서 창의적인 과정에 합류한다[?]. 정말로, 이러한 프로젝트들의 어느 국면이 더 훌륭한 예술적 기술이나 오디오 리믹싱 혹은 이러한 “공인된” 버전을 가능하게 만드는 합법적인 리믹스와 복잡한 라이선스 체결을 표명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결론
[501: 인용문] 누군가는 매시업을 타인의 [지적] 재산을 가지고 하는 유치하고puerile 무례한 장난mucking으로 간주하여 매시업을 삐딱하게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안티-오이디푸스적인 한 그 유치함을 찬양할 수도 있다 – 즉, 매시업이 음악의 이질적인 장르들 사이의 문화 산업에서 일반적으로 강요되는 경계들을 합선시키는 한. (Gunderson 1)
[501:1] 매시업은 분명 양극화 효과를 갖는 논쟁적인 문화적 실천이다. 매시업의 반대자와 비판자에게, 매시업은 분명히 유치하고 명백한 범죄이다. 매시업은 저작권 법과 현존하는 산업의 표준들과 실천들 모두를 위반하는 약탈된 재료들의 불법적인 융합과 불법적인 전용으로 구성된다. 『The Grey Album』과 같은 매시업은 “팝 음악의 역사에서 가장 가치 있는 [지적] 재산들 중 몇몇을” 훔치고rip off, 놀랍지 않게도 권리를 가진 이들은the authorities 이용가능한 모든 합법적인 해결책을 이용하여 대응해왔다. 그러나, 팬과 옹호자에게 있어서, 매시업은 동시대 음악에서 새롭고 잠재적으로 혁명적인 발전을 구성한다. McLeod에 따르면, 매시업은 “해체주의자의 방법을 따르며” “대중음악을 지배하는 취향의 임의적인 위계들을 약화시키고 분열시키고 바꿔놓는다.” (83 – 84).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McLeod는 매시업을 이상화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그의 위치를 인정하면서, 끝내 반대자와 비판자에 의해 사용된 것과 동일한 형이상학적 구조와 가치들을 활용한다.
비록 내가 매시업을 높게 평가하고 있긴 하지만, 나는 매시업을 이상화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왜냐하면, 창의성의 한 형식으로서는, 매시업은 꽤나 제한되어 있고 또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첫째, 매시업은 원본의 재인가능성the recognizability of the original에 의존하기 때문에, 탑 40 팝송들의 비교적 좁은 레퍼토리로 제한된다. 또한, 매시업은 대중 문화에 대해 악명 높을 정도로 짜증을 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Theodor Adorno가 하나의 핵심 지점에 대해 옳았다는 것을 꽤 잘 설명한다. 유럽 예술 음악의 우월성을 주장하면서, Adorno는 팝송들은 단순하고 또 쉽게 상호교환가능한, 모듈 식의 요소들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물론, Adorno는 속물이었다; 그러나 꽤 많은 매시업들을 듣고 나면, Adorno가 그 지점에 대해서만은 옳았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McLeod 86)
비판자와 옹호자 모두에게 있어서, 매시업은 종종 어떠한 비판적인 망설임도 없이 플라톤만큼이나 오래된 레코딩의 형이상학을 재배치하는 것에 의해 이해되고 위치지어진다. 전혀 다른diametrically 상반된 의견들처럼 보이는 것을 명료화하지만, 그 논쟁의 양측은 모두 유사한 가정과 가치를 활용하고leverage 또 의존한다 – 즉, 원본성, 창의성, 진정성 등[을 활용하고 의존한다]. 그리고 양측 모두에서 그 변화가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매시업은 궁극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에 너무 자주all-too-often 귀속되는 이상한 종말론적 어조strange apocalyptic tone와 연관된다. McLeod가 결론내리듯, 매시업은 “세계의 종말의 또다른 징표로, 우리 문화가 시들고 아이디어가 고갈되었다는 증거이다.” (86) 플라톤적 전통에 대한 그러한 순응은 “옳고”, “적합하며”,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검증되고 확고한 토대에 매시업에 대한 현재와 미래의 검토를 제공할 수 있다는 분명한 이점을 가진다. 그 검토들이 이 구조에 상응하는 한, 우리는 어떤 논쟁들이 가능하며 또 어떤 질문들이 제기되어야만 하고 또 어떤 답변들이 적절하다고 간주될 것이며 어떤 이야기들이 말해질 수 있는지를 이미 안다. 그러나, [이렇게] 플라토니즘을 고수하는 것으로부터 오는 분명한 이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전통[플라톤주의]과 그것의 영향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유지할 좋은 이유가 적어도 하나는 존재한다. 특히, 본래 『파이드로스』에서 발전된 (글)쓰기의 기술에 대한 평가는 그 자체로 역설적이게도 기록된 무언가이며 또 그 자체로 (글)쓰기에서 그리고 (글)쓰기에 의해 우리에게 이용가능해진 무언가이다(Lentz). Jacques Derrida가 이 특이하고 잠재적으로 모순적인 전략maneuver을 기술하듯, “플라톤은 모방자들이 모방하는 것: 즉 진리 그 자체에 대한 진리를 복구하기 위해 모방자들을 모방한다.”(Dissemination 112) 이러한 이유에서, 『파이드로스』에서 레코딩 기술에 관하여 기술된 것은, 레코딩 기술이 레코딩 기술에 관한 기술description들을 제공하는 방식에 의해 문제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텍스트의 작동operation이 이미 텍스트 내에서 만들어진 진술들을 위반하고 또 그 역도 마찬가지인, 분명히 모순적인 이 상황은 『파이드로스』에 기록된 많은 것들을 논쟁의 여지가 있고 또 의심스러운 것으로 그려낸다. 여기에서의 기회는 분명해야만 한다. 다른 것들 중에서, 우리가 이러한 텍스트적 어려움을 무시하거나 그 어려움을 단지 “세부 조항technicality”으로 치부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플라토니즘을 단순하게 재생산하거나 반복하는 것 대신에, 우리는 다르게 진행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503:1] 바로 이 지점이 매시업이 들어오는 지점이다. William Gibson이 “두 세기[20세기와 21세기]의 전환기의 특징적인 축pivot”(118)이라고 기술한, 매시업은, 플라토니즘과 레코딩에 대한 플라토니즘적 형이상학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하며, 이 전통[플라토니즘 기반의 전통]에 의도적으로 개입한다. 단순히 원본성과 진정성에 대한 플라톤적 특권화로 환원하거나 그것을 통해 이해하는 대신, 매시업은 의도적으로 파생과 표절과 비-진정성과 난잡합과 반복 – 플라톤적 관점에서는 그저 부정적이고 괴물 같고 결함이 있으며 비뚤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들 - 에 그 자체를 포함시키고 또 그것들을 가지고 논다. 그러나, 매시업 일반 혹은 특정한 어떤 하나의 매시업이 이를 고안하거나originate 야기한다고 말하는 것은 부정확하고 또 잠재적으로 자기-모순적일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매시업에는 혹은 매시업에 관해서는 원본적인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파생적이고 사생아적이며 괴물 같은 본성에 충실하게, 매시업은 어떠한 것도 혁신한다고 말해질 수 없다. 그 대신, 매시업은 그저 이미 레코딩 이론과 실천을 구성하고 또 그 이론과 실천 내에서 이용가능한 일탈들을 약탈하고 재사용하고 리믹스한다. 이를 테면, 축음기 디스크의 표면에 큰 바늘stylus로 천사cherub를 새겨 넣어서 독일의 그라모폰의 트레이드마크를 의도적으로 언급하는32, 책 『The Recording Angel』에서 제시된, “레코드”라는 단어에 관한 Evan Eisenberg의 코멘트를 떠올려보라. “’레코드’라는 단어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라고 Eisenberg는 쓴다. “오직 라이브 레코딩만이 하나의 사건을 기록한다; 대다수에 해당하는 스튜디오 레코딩은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는다. 실제 사건들의 작은 조각들로부터 함께 짜맞춰져서, 그것들은 하나의 이상적인 사건을 구성한다. 그것들은 마치 미노타우르스에 대한 합성 사진composite photograph 같다.”(89) Edison 자신이 의도했듯, Alan Lomax와 같은 민족음악학자의 보존을 위한 노력이나 콘서트 실연의 라이브 레코딩처럼, 사운드 레코딩이 다큐멘터리적 양태로 기능하는 사례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레코딩의 대다수는 다르게 창작되고 또 다르게 작동한다. Eisenberg가 지적하듯, 사운드 레코딩은, 특히 대중음악의 사운드 레코딩은 정말로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는다. 그 대신, 대중음악의 사운드 레코딩은, 종종 영리한 스튜디오 조작과 다양한 기술적 책략을 통해, 그들이 기록한다고 우리가 상정하는 것을 제작한다. 결론적으로, 레코딩은, 그것의 매우 초창기에서부터, 시뮬라시옹에 불가분적으로 포함된다. 설상가상으로, 라이브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 레코딩의 산물이다. 실질적으로, “라이브 음악”은, 특히 그 표현이 록 음악과 다른 대중 음악 형식들에서 이해되는 것으로서의 라이브 음악은, 개별 밴드의 레코딩 작업에 선행하는 어떤 비매개적인immediate 원본 사운드가 아니다. 대신, Steve Jones가 주장하듯, 밴드의 라이브 퍼포먼스는, 레코딩에서 들려지고 또 레코딩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에 가능한 한 가까운 콘서트홀에서의 소리를 제공하면서, 종종 “그것의 레코딩을 모방하려고” 노력한다. Jacques Attali가 기술하듯, “대중음악의 콘서트와 투어는 이제 모두 너무 자주 레코드의 복사본에 불과하다.” (118). 혹은, Baudrillard의 이론화와 놀랍게도 비슷하게 들리는 구절에서 Sterne이 결론 내리듯, “복제가 원본(성)에 선행한다.” (221) 그러므로, 매시업은 레코딩의 형이상학에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도입하는 게 아니라, 사운드 레코딩과 지적 재산권과 디지털 기술에 대해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모든 노이즈에 대해 들어질 수 있는 방식으로 그것들을 약탈하고 리믹스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