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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각적 대상으로 소리를 구획 짓기

서민우, 〈구획들〉

review on sonic in 2023 at 전시 〈구획들〉 도록

깁슨James Gibson의 논의처럼 촉각이 단지 피부를 통해 이루어지는 지각 양태만이 아니라 “개인이 환경과 몸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 쓰는” 혹은 “사람이 문자 그대로 환경과 접촉하게 해주는” 지각체계라면, 서민우의 《구획들》은 사물의 지각 양태를 새로이 구획 짓는다.1 《구획들》에서 우리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 우리는 《구획들》에서 소리와 접촉한다.

우리의 촉각체계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떠올려 보자. 주체가 피부를 통해 외부 세계의 대상의 표면과 접촉한다. 피부와 대상 표면 사이의 접촉에 의해 발생한 자극은 수용기receptor를 통해 촉각체계로 입력된다. 다만, 이때 입력된 정보는 오롯이 바로 그 특정 대상의 촉각 정보만이 아니다. 왜냐하면, 주체가 접촉한 표면은 외부 대상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거나, 또 때로는 지각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닌 다른 대상의 표면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른 수용기를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입력되는 또 다른 대상에 관한 정보가 침입하여 복합적으로 처리되기도 한다.

서민우가 《구획들》에서 제시되는 소리들을 채집하는 과정은 촉각체계의 메커니즘과 유사하다. 서민우가 레코더를 통해 외부 세계의 소리를 마주한다. 레코더와 Hall1의 내·외부에서 발생한 불특정 다수의 소리 사이의 접촉이 발생하고, 이 접촉-사건에 의해 발생한 자극은 디지털 신호로 기록되어 저장 매체에 입력된다. 다만, 이때 입력된 정보는 오롯이 서민우가 의도했던(혹은 지향했던) 바로 그 특정 대상의 소리만이 아니다. 왜냐하면, 서민우가 레코더를 통해 채집한 소리는 내·외부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소리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거나, 채집하고자 의도한 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들)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1. Hall Ambience〉과 〈10. 자국들〉처럼 전시장 전반의 소리를 포착하고자 한 시도들에는 레코더의 물리적 한계로 인해 Hall1 내부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리가 균일하게 담기진 않는다. 심지어, 인접한 창고에서 이루어지는 물류 처리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호음이나 바로 앞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의 배기음과 같은 예상치 못한 소리가 침입하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것이 동시다발적으로 입력되어 Hall1의 “앰비언스”이자 “자국들”로서 제시된다.

그러나 《구획들》에서의 경험을 촉각적 경험으로 이해하는 일을 보다 합리적으로 만드는 것은 소리에 대한 감상자인 우리의 접촉 방식이다. 감상자는 《구획들》에서 능동적으로 어떤 소리와 접촉하지 않는다. 즉, 우리는 사실 ‘Hall1과 그 주변 환경으로부터 비롯된 소리에 대한 서민우의 접촉’을 접촉할 뿐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5. Crowbar Generator〉나 〈6. Saw Generator〉, 혹은 〈7. Drill Generator〉를 마주할 때 접촉하는 소리는 지금-여기에 현존하는 Hall1의 소리가 아니라 서민우가 과거에 전시를 준비하며 포착했으나 이제는 실재하지 않는 Hall1의 소리이다. 우리는 서민우의 그러한 접촉을 접촉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촉은 전시장에 세워진 조형물을 만져보는 행위를 통해 예화된다. 일반적인 화이트큐브에서의 전시였다면, 특히 조각으로서의 조형물을 보여주는 전시였다면, 이러한 접촉은 금지되었겠지만 《구획들》은 이를 권장함으로써 감상자의 접촉을 성사시키고자 한다. 감상자는 소리가 발생하는 스피커를 감싸고 있는 조형물에, 손끝을 대고 등을 기대거나 팔로 감싸 안기도 하며 서민우의 접촉-사건과 접촉하는 것이다.

감상자의 이러한 접촉 방식은 마치 우리가 막대기 끝으로 멀리 있는 사물의 표면을 만질 때 이루어지는 촉각적 사건과 흡사하다. 우리는 자신의 손만으로는 닿지 않는 거리에 위치한 사물을 종종 긴 막대기를 통해 접촉한다. 엄밀히 말하면, 이 사례에서의 접촉-사건은 둘로 구분되어야 한다. 한 접촉-사건은 사물과 막대 사이에서 발생하고, 다른 한 접촉-사건은 막대와 손 사이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분명 둘은 서로 다른 접촉-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사물의 표면에 대한 촉각을 느낀다고 말하고, 심지어 자신의 손끝이 아닌 막대 끝에서 사물의 표면을 느낀다고 진술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때 우리가 접촉하는 표면은 대체 무엇인가? 얼핏 생각하면 Hall1의 곳곳에 배치된 조형물을 곧 《구획들》에서 접촉되는 대상의 표면과 동일시하기 쉽다. 그러나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서민우 자신이 접촉한 표면이다. ‘서민우의 접촉-사건’을 접촉하는 우리가 접촉하는 표면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전시장을 배회하고 서성이며… 더듬거린다.

요컨대, 《구획들》에서 소리는 더 이상 청각적 대상이 아니다. 그보다 《구획들》에서 소리는 촉각적 대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리를 듣기보다는 소리를 만지고 더듬거리고 느끼며 접촉한다. 《구획들》은 소리라는 사물의 지각 양태를, 그리고 우리의 지각 체계를 새로이 구획한다.

촉각적 대상으로 소리를 구획 짓기2023-11-30review on sonicNow here
제임스 깁슨, 박형생 외 역, 『지각체계로 본 감각』, 아카넷. 1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