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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review on event in 2023 at 미공개 원고

‘우리는 무언가를 듣는다/본다’라는 문장은 사실 부정확한 문장이다. 우리의 지각 경험을 흔히 기술하는 일상적 문장이 부정확하다는 지적이 너무 급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자. 우리는 자기 자신이 ‘바로 그’ 무언가를 듣고/보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단언할 수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그저 ‘(우리 자신이) 무언가를 듣는다/본다’고 믿는 것이 아닐까? 내가 듣고 있는 드럼 소리가 사실은 합성된 전자음에 불과했던 사례는 이제 너무 자주 발생하는 일이라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이처럼 우리가 무언가를 지각하는 사건은 분명 단일한데, 지각 경험이라는 현상과 그 현상에 관한 믿음 사이의 이러한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즉, 우리의 지각 경험perceptual experience과 지각 경험에 관한 인지cognition 사이에는 어떤 균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파노Pano와 전자음악가 안벼리로 구성된 팀 paab이 오디오-비주얼 쇼케이스 프로젝트 《마잼mahgem》의 일환으로 제시하는 오디오-비주얼은 지각과 인지 사이의 이러한 미세한 균열을 선명한 간극으로 만든다. 표면적으로 paab은 앰비언트ambient에 가까운 음악을 제시한다. 안벼리는 필드 레코딩을 통해 채집한 주변의 여러 소리들을 변형하거나 재구성하여 들려주고, 파노Pano 또한 주변에서 채집된 풍경들을 쪼개거나 이어 붙여 보여준다. 이러한 오디오-비주얼은 때로는 계획된 바에 의해 반복적으로 제시되고 또 때로는 즉흥적으로 혹은 불규칙적으로 제시됨으로써, 그 자체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우리의 주변 환경인 앰비언트를 재현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paab의 오디오-비주얼은 오히려 반(反)-앰비언트적인 대상이 된다. 감상자는 소리와 영상의 출처를 알지 못하기에, 자신이 듣고 있는 음악과 보고 있는 영상이 라이브가 이루어지고 있는 공간을 둘러싼 주변 환경으로부터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제시되는 소리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채집된 날 것의 소리에 근간을 두지만, 잘 가공되어 전달되는 탓에 감상자는 별도의 설명 없이 이를 알아채기 어렵다. 이와 유사하게, 제시되는 영상들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퍼포먼스가 수행되는 공간 주변의 풍경들을 담아냈지만, 잘 편집된 채로 제시되기에 감상자가 그 근원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앰비언트를 반-앰비언트적 대상으로 뒤바꾸어 놓는 paab의 퍼포먼스는 지각과 인지 사이의 간극을 형상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분명 주위 환경의 소리를 듣고 풍경을 보지만, 지각되는 바를 앰비언트로서 듣거나 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에게 들려오는 것과 보이는 것은 주변적인 것이 아니라 지각과 지각에 기반한 감상의 중심이 된다. 앰비언트에 해당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반-앰비언트적인 것으로 보이고 들리는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우리는 그것들이 앰비언트라고 ‘믿는다’(혹은 ‘믿어야만 한다’).

지각과 인지 사이의 이러한 불화는 오디오-비주얼 그 자체보다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거나 휴식을 취하는 데 있어서 일상의 배경으로 기능하던 카페는, 순식간에 다채널 영상이 투사되는 화이트큐브이자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블랙박스가 된다. 내리쬐는 햇살을 막기 위해 설치된 블라인드나 외부에서의 응시를 차단하기 위한 불투명 유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스크린으로 기능한다. 마찬가지로, 공간의 미감을 위해 바닥에 깔린 러그는 영상이 재생되는 화면이자 Paab이 라이브를 진행하는 특수한 무대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렇듯, 앰비언트적인 오디오-비주얼을 제시하는 사건은 역설적이게도 그 주변 환경을 반-앰비언트적인 주의attention의 장소로 바꾸어 놓는다.

더 나아가, paab의 퍼포먼스는 축자적 의미에서의 앰비언트까지도 감상의 대상으로 만든다. paab이 자리한 공간의 좌·우측에는 외부의 풍경을 비추는 유리창이 존재하는데,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동안 투명한 창을 통해 수많은 외부 세계의 사물들이 투영된다. 유리창 너머로 비춰지는 풍경들, 예컨대 건물 주위의 풀과 나무, 맞은편 도로를 지나는 트럭, 시시각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나 비치는 햇살 등은 문자 그대로 ‘환경’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대상들은 너무나도 일상적이기에 퍼포머를, 그리고 감상자를 실시간으로 둘러싸고 있지만 특별한 주의와 감상의 대상이 되진 않는다. 그런데 paab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쇼케이스 영상은 ‘바로 그’ 환경의 소리와 풍경까지 실시간으로 제시하며 이를 감상과 주의의 대상으로 만든다. 즉, 아이러니하게도 주변 환경으로부터 비롯된 소리와 풍경은, 블랙박스 내부로 침입하여 환경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지위의 객체로 기능한다.

“보는 것이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이라는 격률처럼, 우리는 종종 지각한 것을 그대로 믿곤 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 격률을 재고해보아야 한다. Paab의 퍼포먼스로부터 우리는 더 이상 무언가를 보거나 들었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그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앰비언트를 비-앰비언트적 대상으로 탈바꿈시키는 paab의 퍼포먼스는 우리의 지각과 믿음(인지) 사이의 불화의 시발점이자 간극에 대한 오디오-비주얼적 재현으로써, 그 탐구의 단초가 될 것이다.

듣는/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2023-12-26review on eventNow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