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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우 - 《허물과 궤적: 나선형 수평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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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우는 자신의 작업을 “가짜 음악”이라고 부른다. 그 말을 듣고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 하지만 이내 나 또한 서민우를 음악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를 소리를 재료로 삼는 작가라고 규정해 왔을 뿐 음악가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단,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이는 결코 평가적 의미의 진술이 아니라 분류적 의미의 진술이다.)

일상적으로 음악은 연속적으로 배치된 여러 소리들로 구성된 다발과 동일시되기에, 표층적으로 서민우의 작업은 음악처럼 보인다. 서민우는 레코딩을 통해 여러 소리들을 모아 일련의 소리들로 구성된 청각적 산물을 만들고 그것을 청자에게 제시한다. 물론 서민우가 만든 소리들의 질감이나 분위기가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는 있겠으나, 단지 그러한 이유만으로 그의 작업을 비-음악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

도리어 서민우는 누구보다도 축자적인 의미에서 소리를 ‘만든다’. 그는 직접 콘을 조립하고, 그에 맞는 목재나 철판을 자르고 구부리고 깎고 붙이며 스피커를 제작한다. 그렇게 제작한 스피커를 토대로 전형적인 모노나 스테레오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위치시키고, 의도적으로 반향을 만들어내도록 조형물을 배치하는 등 자신이 원하는 대로 청자의 경험을 설계하고자 노력한다.

실제로 서민우는 새 앨범 《허물과 궤적: 나선형 수평계》에서도 늘 그랬듯 성실하게 소리들을 모으고 쪼개고 비틀고 겹쳐내며 새로운 소리를 들려준다. 전작 《구획들》과 흡사하게, 그는 《허물과 궤적》의 많은 트랙들을 위해 필드 레코딩을 통해 외부 세계의 소리를 채집한다. 서민우는 라이브 퍼포먼스와 전시의 장소인 아케이드서울을 비롯하여(〈Walk for Walk〉, 〈다섯 번 접은 방〉), 자신의 방(〈폐쇄형 정원〉), 지하철역(〈정수리에서 한 뼘 만큼의 원형〉), 장위동(〈Walk for Scar〉) 등 다양한 공간에서 소리를 채집하여 재료로 삼는다. 그리고 이러한 소리들을 때로는 잘게 쪼개거나 이펙터를 활용해 왜곡시키고 채집된 다른 소리와 뒤섞기도 하며, 소프트웨어를 통해 합성한 소리와 나란히 배치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리들을 묶어낸다. 즉, 서민우는 여러 방식으로 묶여진 소리 연쇄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런데 어떤 대상이 단지 ‘일련의 소리 연쇄’일 뿐이라면, 정말 그 대상이 ‘음악’일까? 우리는 연속적으로 배치된 여러 소리들로 구성된 하나의 다발을 음악과 쉬이 동일시하지만, 이는 ‘우연하게 성립된 일련의 소리 연쇄’와 ‘음악’을 구분 짓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오히려 우리는 음악을 ‘일련의 소리 연쇄’에 다른 무언가가 더해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음악에는 창작자의 의도가 반영되어야 한다거나 감정이 표현되어야 한다는 뻔하지만 납득할만한 생각처럼 무언가가 일련의 소리 연쇄에 덧붙여져야 비로소 음악이라는 개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허물과 궤적》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가짜 음악”이라는 서민우의 말처럼, 음악과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구성되지만 문자 그대로 음악이 아닌 “유사-음악quasi-music” 혹은 “준-음악pseudo-music”으로 작동한다. 《허물과 궤적》을 구성하는 트랙은 모두 음악의 존재론적 필요조건인 ‘일련의 소리 연쇄’를 충족한다. 분명 서민우의 의도에 따라 특정하게 묶인 것 같기에 ‘일련의 소리 연쇄’를 넘어 ‘음악’과 동일시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허나 앨범의 모든 트랙은 특정한 음악적 동기나 문법, 의도 등에 의해 추동되어 현재의 상태로 채집되고 엮여서 각각의 소리 다발이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허물과 궤적》에서 소리를 묶는 과정은 우연과 무작위성에 의거한다. 예컨대, 그는 〈폐쇄형 정원〉을 만들기 위해 하나의 소리를 7개로 쪼개고, 그 위에 동일하게 7등분 된 또 다른 소리 클립들을 포갠다. 여기에는 왜 7등분하는지, 왜 쪼개어진 클립들을 서로 포개는지에 대한 특별한 음악적 이유가 없다. 그는 그저 계속해서 소리 연쇄 혹은 다발을 분해하거나 대입하거나 추출하거나 합성하여 또 다른 소리 연쇄와 다발을 만들어 낼 뿐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서민우의 작업을 “유사-음악” 혹은 “준-음악”으로 규정하면서도 《허물과 궤적》을 음악처럼 감상했다. 의식적으로는 음악과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구성되었을 뿐인 무언가라고 경계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는 앰비언트와 필드 레코딩 앨범처럼 경험하며 혼란에 빠졌다. 이러한 혼란은 《허물과 궤적》과 연관된 작업들이 계속 진행될수록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혼란이 마냥 싫지는 않다. 그가 소리들을 뒤섞고 겹치며 하나의 다발로 묶어낼수록, 음악과 소리에 관한 우리의 믿음과 직관이 쪼개지고 갈라지며 남길 허물과 궤적이 궁금할 따름이다.

서민우 - 《허물과 궤적: 나선형 수평계》2025-05-15Liner's note on sonicNow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