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ena Abate - Dressing as an Ordinary Aesthetic Practice(2021)
초록: 이 논문의 목적은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미학적 기획에 의거하여 일상미학으로서 패션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간략히 제시하는 것이다. 패션의 일상적 차원dimension을 분석하기 위해, 나는 책 〈패션에 관한 철학적 관점들〉에서 패션을 미적 현상으로서 제기한 Giovanni Matteucci의 설명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 책에서, M은 패션을 “삶의 형식form of life”이라는 비트겐슈타인적 개념과 병치하는 아이디어를 도입한다. 이에 따라, 이 논문에서 나의 목표는 “삶의 형식”이라는 비트겐슈타인적 개념과 옷 입기dressing라는 일상적 실천 사이의 닮음resemblances을 보여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패션이라는 실천의 미적 함축을 특징짓는 것이다. 나는 일상적으로 옷을 입는 행위가 미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언어의 일종을 구조적으로 사용한다employ고 주장할 것이다 - 1933년과 1938년 케임브리지에서의 강의에서 제기한 미학에 관한 비트겐슈타인의 설명에 따라서 말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일상적 옷 입기로 의도된) 패션에서는 언어의 문법과 사회적으로 부호화된encoded 미적 반응 사이의 상호 연관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즉,] 패션은 의복dress의 뜻을 정의하는 새로운 규칙들을 설정한다set[는 것이다]; 이어서, 이러한 규칙들은 패션의 주기적인 계절성과 개인의 좋은 취향을 따르기 때문에 영원하지 않다. 그러므로 옷에 대한 실천들을 일상적으로 찬동하는daily commits to the practices of clothing 모든 사람은 규칙에 대한 민감성sensitivity을 획득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동일한 “옷 입기의 문법” 내에서 훈련될 수 있다.
1. 서론
[111:1] 패션에 관한 탐구가 여러 분과 학문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패션”이라는 용어의 명확하고 정확한 정의를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사실 나는 [이 용어와 관련된] 현상의 모든 특징적인 국면을 설명할 수 있는 단일한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패션을 “기관institution, 조직organization, 집단group, 생산자producer, 사건event, 그리고 실천의 체계”로 간주하는 Kawamura(2005, p. 43)의 정의를 예로 들어보자. 패션에 관한 K의 해석은 꽤나 정확하고 철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이라는 용어가 K가 허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의의significance를 담는다는 점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다. 즉, 패션은 일반적인 문화적 혹은 soft-cultural 현상이라는 점에서 K의 정의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112:1] 최근까지도, 우리 삶과 문화에 체화된embedded 실천으로서의, 패션이라는 이러한 일상적 차원은 철학에서 비교적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해왔다. 그러나 현대에서는modern times 패션이라는 이러한 일상적 차원을 미적 현상으로 고려할 이유가 존재한다. 오늘날, 여러 미적 요소들이 우리 삶과 얽혀있으며intertwin(Di Stefano 2012를 보라), 옷 입기라는 루틴과 그 일상성은 미적 형식을 획득해왔다: [즉,] 매일 스스로 옷을 입는 일은 타인에게 예의를 차리거나be decent 매력적이기 위해서 우리가 달성하곤 하는 실천적 과업일 뿐만 아니라, 미적 속성과 가치와 관련되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 나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미적 고찰을 참고하여, 옷 입기라는 우리의 일상적 실천 뒤에 위치한 내재적인 미적 메커니즘에 관한 철학적 설명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첫 번째 섹션에서는 옷clothing의 일상미학적 차원에 관하여 조금 더 말해보고자 한다.
2. 옷의 일상미학적 차원
[112:2] 패션의 일상적 차원은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들과 함께하는remain with people over time” 일상과 연관된다(Buckley and Clark 2012, p. 19). 우리는 스스로가 패션을 경험하고 있다고 알아차리지 못하면서도 패션을 매일 경험한다. “일상은 우리의 주의attention 아래beneath에 존재(Sheringham 2006, p. 22)”하기 때문에, 스스로 옷 입는 일dressing ourselves은 너무 당연한obvious 것으로 지각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옷 입는 일은 우리의 알아차림으로부터 벗어난다.1 패션에서, 일상성everydayness에 대한 지각은 위치시키기 어려운데, 왜냐하면 패션은 현대성modernity과 빠름fastness, 그리고 덧없음fleetingness과 주로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패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패션이 (속도velocity와 변동성variableness으로 의도된) 현대성과 일상성 사이의 연접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112:3] 정말로, 하나의 체계로서의 패션은 특별하고extraordinary, 허영적이며extravagant, 흔하지 않은uncommon 것으로 지각된다. 왜냐하면 하나의 체계로서의 패션은 런웨이, 럭셔리 브랜드, 계절성seasonality, 그리고 갱신되는 트렌드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즉,] 하나의 체계로서의 패션은, 그 대상에 대한 매력을 산출하고, 대중the mass으로 하여금 창조된 대부분의 것들을 소비하게끔 밀어넣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패션은, 그것들에 붙어 있는 메타-상품들의 매력 때문에 구매되는 산물들을 제공한다.”(Meinhold 2013, p. 135). 그러나 사실은, 패션은 - 그것의 일상적 차원에서 - 일상적인 동시에 - 패션의 체계가 계절성과 새로움novelty를 형성하는 한 - 비일상적extraordinary이다.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스스로 옷을 입으며, 이러한 방식으로 패션 사이클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묘사한다depict. 그래서 매일 옷을 입는 실천이 미학과 어느 정도로 얽혀있는지be intertwined with, 그리고 정말로 그러한 실천이 그 표면 아래의 실재와 우리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형성하는지에 관한 문제가 제기된다(Matteucci 2016을 보라).
[113:1] 후자에 관하여, 나는 패션의 일상적 차원에 관한 철학적 고찰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전통적으로, 패션은 “불규칙한irregular 방식으로 함께 결합된 여러 문제들a bundle of problems”(Matteucci 2017, p. 13)으로서 간주되어서 견고한 이론적 기초를 결여한 채로 고찰되곤 했다; 다행히도, 저서 [패션에 관한 철학적 관점들Philosophical Perspectives on fashion](2017)에서, 패션이라는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철학적 설명이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것이 아님을 보이면서 M은 최근 4개의 분석미학적 이론과 패션 사이의 비교를 제시한다. 내 입장에서, 패션에 볼하임의 미학 이론을 병치하는 것은 일상에서의 패션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패션의 일상적 국면을 기술하는 최고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113:2] 예술과 미학으로 이해되어야만 하는 것을 개괄하며, 볼하임은 예술을 “삶의 형식form of life”와 비교한다(1968, §45, §46-49, §51-53, §55). 비트겐슈타인의 개념인 “삶의 형식”을 미학에 적용시키는 것은invoking, 연관된 주체들이 공유된 취향의 지평을 그려내며 자신을 표현하는 실험적이고 문화적인 실천들을 고려하는 일을 함축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취향의 지평을 표현하는 것은 기호학적 작동 방식modus operandi을 따라 사물들을 표상하는represent 기호들이나 지표들index의 고정된 집합을 확립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조적으로, 취향의 지평을 그리는 것은 사물들의 골상physiognomy을 일상적인 방식으로 끌어내는 것인데, 이는 친숙함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친숙한 미적 관계들의 체계는 예술 그리고 - 내가 아래에서 보여주고자 소망하듯 - 패션과 같은, 취향의 다양한 형식을 통해 표명된다manifested.
3. 철학적 탐구와 미학에 관한 강의들
[113:3] “삶의 형식”이라는 개념을 패션에 적용하기 위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와 관련하여, 이러한 개념들 그리고 연관된 다른 개념들notion을 우선 먼저 소개하는 게 필수적이다. 앞서 살짝 언급했듯, ‘삶의 형식’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습관들, 내재적 경험들, 언어와 그 사용의 집합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 Übereinstimmung은 언어에 기반한situated in 간주관적인 합의agreement를 구성하는데, 이 합의는 세계에서의 경험에 대한 합의와 가능적 구성의 장소이자 보편적 매개체로서 해석된다(Borutti 1993, p. 1). 삶의 형식으로서의 언어는 가능적 공동체possible community의 한 조건이다. “삶의 형식”이라는 개념은 비트겐슈타인에 의해 언어라는 개념으로 묶이며(비트겐슈타인 1953, §19 − §23을 참고하라), 결과적으로 “언어 게임”이라는 개념에 있어서, 비트겐슈타인이 말하길 언어 게임들은 “단지 유사성 뿐만이 아니라 차이성dissimilarities을 통해서도 우리 언어의 사실들을 밝히기 위해 고안된be meant to 비교의 대상”이다(비트겐슈타인 1953, §130). 언어 게임들은 언어를 바라보는 우리의 방식을 확장하고 우리가 언어의 다중성multiplicity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하는 모델들이다. “게임”이라고 말함으로써, 비트겐슈타인은 규칙rule과 규칙성regularity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의도했다: [즉,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을 강조하고자 의도했다] “규칙은 게임을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비트겐슈타인 1953, §54) 우리는 게임을 관찰하거나 게임을 플레잉하는 것 모두를 통해 규칙을 배울 수 있다. 후자에서, 플레이어는 실천을 통해 직접적으로 게임의 규칙들을 이해할 수 있다.
[114:1] 언어의 사례에서, 이는 우리가 하나의 언어 게임에서 서로 다른 단어들의 의미와 그러한 단어들을 지배하는 구체적인 규칙들을 이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 게임은 단어 그 자체의 적용 영역(즉, 언어에서의 단어들의 사용)에 접근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규칙 없이, 단어는 그 어떤 의미도 갖지 않으며, 만약 규칙이 변화한다면 의미도 변화한다”라고 단언한다(비트겐슈타인 1953, §552). 그 규칙을 따름으로써, 우리는 그 규칙이 무엇인지와 그 규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다.
[114:2] 더 나아가,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규칙을 따르기obeying a rule’ 또한 하나의 실천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의 규칙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는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규칙을 ‘사적으로’ 따르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규칙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규칙을 따르는 것과 동일한 것이 될테니 말이다(비트겐슈타인 1953, §202). 정말로, 하나의 규칙을 따르는 것은 공적인 실천이다. 왜냐하면 규칙을 따르는 것은 동일한 규칙을 따르는 사람들이 그 규칙을 재인하는 것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규칙 따르기는 그 규칙을 강화하는 승인, 반감disapproval, 제스쳐, 명령 등등을 필요로 한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이러한 것들은 사람들이 합의한 습관에 관련된 규칙을 따르는 것에 관한 표현에 대한 “문법적 주석grammatical annotations”이다.
[114:3] 지금까지 나는 “삶의 형식”, “언어 게임”, 그리고 “규칙”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개념을 간략히 명료화했으므로, 우리는 이제 비트겐슈타인의 미(학)적 구상에 관한 고찰을 할 수 있다. 후자에 관해서는 비트겐슈타인의 〈1930-1933년 강의〉와 〈미학, 심리학, 종교적 믿음에 관한 강의와 대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해당 작업들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미학’이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미적 장the aesthetic field이 “매우 크고 완전히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주로 미적 표현의 사용과 미적 표현의 언어적 형식에 초점을 맞추면서, 미적 판단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탐구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며 전통적인 미학 담론과 맞서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용어들을 형이상학적 사용에서 일상적 사용으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1953, 48절). 그 문제는 비트겐슈타인이 “미적 어려움puzzlement”라고 부른 것의 원천을 국소화localizing한다: [즉] 우리는 특정한 예술작품을 조우할 때, 불안감disquiet이나 미적 불편함discomfort를 경험하는 동시에 자신의 경험의 원천에 관하여 혼란스러움을 느낀다(Johannessen 2004, p. 17).
[115:1]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미학의 개념은 어떤 것이 작동하는지 아닌지, 그것이 쾌인지 불쾌인지, 그것이 옳은 표현 혹은 옳은 제스쳐를 갖는지 아닌지 여부를 다룬다. 달리 말하자면, 미학은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이해하는 것에 관한 것이며, 정말로 이러한 이해의 이유를 제공하는 일에 관한 것이다. 미학에서 무언가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과 관련하여, 비트겐슈타인은 미적 규칙을 중요하게 언급한다. 사실, 미적 규칙들의 집합에 익숙해지는 것은 미적 올바름 혹은 미적 그름incorrectness의 기준을 포착하는 일에 있어서 본질적이다. 결론적으로, 미적 규칙에 관한 우리의 지식이 정확할 수록, 우리의 미적 판단은 더 적절해진다. 비트겐슈타인이 주장했듯, 미적 규칙들은 미적 판단들에 있어서 핵심적인데be vital to, 왜냐하면 “만약 내가 그 규칙들을 배우지 못했다면, 나는 미적 판단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미적 규칙들을 배우면서, 더욱 더 정제된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규칙을 배우는 것은 정말로 판단을 바꾸”기 때문이다.
[115:2] 미적 판단의 의미, 그리고 그 미적 판단을 둘러싼 모든 미적 행위들의 의미는, 그 판단이 사용된 사회-문화적 맥락 내에서 발견될 수 있으며,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그 의미는] 우리의 “삶의 방식way of living”에서의 그 미적 판단의 역할 내에서 발견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미적 평가에 관한 우리의 패러다임들은 우리의 문화적 삶의 양식과 얽혀 있는 만큼이나 불명료하거나obscure 복잡하다: [즉] 그 패러다임들은 개념들에 의해 쉽사리 포착될 수 없다. 사실, 미적 판단에 대한 표현들은 한 역사적 시기의 문화 내에서 복잡한 역할들을 보여준다. 슈스터만이 확언하듯, “우리의 미적 개념들은 우리의 삶의 양식, 즉, 역사 속에서 사회적 / 기술적 / 그리고 이론적 발전에 따라 변화하는 삶의 방식 내에서 불가분하게 엮여 있다be bound up.” 미적 언어 게임을 이해하고 기술하기 위해서는, 미적 감성aesthetic sensitivity를 개발할 수 있는 미적 실천들을 채택하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116:1] 마지막으로, 미학에 관한 비트겐슈타인의 기획에서 또다른 본질적인 요소는 미적 반응aesthetic reaction이라는 개념notion인데, 미적 반응이란 그 반응을 촉발하는 대상에 대한 표현과 제스쳐를 포함한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미적 반응은 미학의 개념을 다루는 데 있어서 큰 중요성을 가진다: 정말로, 미적 반응을 통해 그러한 미적 반응을 유발하는 이유reason - 이는 원인cause과 다르다 - 로 돌아갈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목표는 미적 설명을 제공하여 우리의 미적 어려움puzzlement를 해결하려고resolve 시도하는 것이다. 사실, 비트겐슈타인이 다음과 같이 지적하듯: “미학의 문제는 ‘당신은 그것을 좋아하는가like? 만약 좋아한다면, 왜 좋아하는가?’가 아니다”. 미적 인상과 반응은 외적-인과적 문제로 설명될 수 없다: “미적 불편함에는 ‘왜?’가 있을 뿐, ‘원인’이 있지 않다.”
4. 규칙에 따라 옷 입기: 삶의 미적 형식
[116:2] 지금까지 논한 내용을 염두에 둔다면, 이제 패션 메커니즘에 대한 미적 이론을 간략히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목표는 만약 패션의 일상적 측면들이 비트겐슈타인적 관점과 비교될 수 있는지, 혹은 비트겐슈타인의 미적 기획이 패션에 얼마나 유의미하게 병치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116:3] 첫째, 우리의 일상 루틴에서 스스로 옷을 입는 행위는, 우리가 패션 아이템을 조화롭게 매치시킬 때 따르는, 일련의 미적 규칙을 보여준다. 패션에 관한 규칙들은 임의적인데, 왜냐하면 그 규칙들은 그것들이 발전한 역사적 시기와 맥락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즉] 그 규칙들은 영원하지 않은데, 왜냐하면 그 규칙들은 패션 그 자체에 내재하는immanent to 임시적인 순환적 진화를 따르기 때문이다. 사실 핀란드 철학자 한나 애플퀴스트가 지적하듯, “규칙은 우리가 계속함에 따라 변화되고 버려질 수 있다.” 그러므로, 옷clothes의 의미는 서로 다른 일상적 맥락들과 연관되고, 그래서 그 의미는 우리가 옷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즉] 단어의 의미가 그것의 사용과 그 사용employment 맥락에 따라 변화할 수 있듯, 특정한 방식으로 혹은 특정한 장소에서 착용된 의복garment 또한 서로 다른 의미들을 획득할 수 있다. 특정한 맥락을 지배하는 미적 규칙들을 따르는 옷 입기라는 행동act은 하나의 행위action이다 - 그리고 그 행위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실천practice을 구성한다. 게다가, 미적 규칙들은 대부분 실천에 의해 설명되고 이해된다; 정말로, 적절하게 옷을 입는 일에는 엄밀한precise 훈련이 요구된다. 이 훈련은, 우리가 아이템들의 새로운 조합을 발명invent한다는 점에서 엄밀한 의미로 실용적이며, 동시에 언어 [자체]가 하나의 실천이기에 “동의, 거부, 예상, 격려의 표현을 통해”(비트겐슈타인 1953, 208절) 우리는 미적 훈련 과정에서 언어를 확실히 활용한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로 실용적이기도 하다.
[117:1] 훈련과 실천exercise을 통해, 우리는 ‘옷 입기의 문법’ - 예컨대,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에 관한 규칙들의 집합 - 에 접근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한편으로는 옳은 맥락에서 그 규칙들을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배울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패션에 관련된 문제들에 관한 능숙한 판단을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패션이라는 현상을 지배하는 규칙들에 민감해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 규칙들에 더 민감해질 수록, 우리는 패션이라는 장field 내에서 더욱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옷 입기의 문법”에 더 익숙해지는 것을 통해, 패션의 해석적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데, 이 공간은 패션의 그리고 패션을 위한 새로운 규칙들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다. 패션을 이해하는 전문가들은 우리가 패션에서 훈련을 받을 때 비교하게 되는 척도yardstick가 된다.
[117:2] 게다가, 패션은 미적 반응의 원천이기도 하다: 짧은 드레스 혹은 긴 드레스는 (언어적 혹은 비-언어적) 반감disapproval의 기호sign나 이해appreciation의 반응을 통해 표현될 수 있는 불편한 반응을 우리에게 일으킬 수 있다(비트겐슈타인 1967, 1:13 참고).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의 복장garment의 잦은 사용은 그 복장에 대한 우리의 쾌를 지칭한다denote. 이러한 의미에서, 복장의 사용은 특정한 맥락에서 한 옷의 의미와 우리가 그 특정한 복장에 대해 느끼는 쾌 모두를 표현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는 패션에서 적절성correctness에 관한 미적 기준에 근거한 미적 판단을 표현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패션에서 하나의 미적 판단을 내릴 때, 우리는 어느 정도 명백한 규칙들의 집합을 참고하는데, 이는 특정한 옷 혹은 악세사리의 적절성(혹은 부적절성)을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의 패션 조합이 미적으로 옳은지 아니면 그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117:3] 여기서, 우리는 적절성이라는 미적 개념에 가까운, 비트겐슈타인의 또다른 핵심적 개념인 “클리킹clicking” 개념을 조우하게 된다. “클릭”은 무언가가 나타났을 때 일어나는 정확성correctness에 대한 지각으로 구성될 수 있다(예를 들면, 바늘이 완전히 대칭적인 위치에 도달할 때의 시계). 사실, 패션의 규칙은 개념적으로 포착하기 어렵기에, “클리킹”이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come into play, 패션과 연관된 판단에 대한 척도parameter 또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특정한 규칙을 따르는 올바른 방식에 대한 최종적인 증거proof에 불과하다.
[118:1] 그러나, 패션에 대한 미적 패러다임과 관련된 몇몇 문제들이 존재한다. 이 논문에서의 설명을 따르면, 주된 하나의 문제는 우리가 매일 옷입기에서 의존하는 규칙들의 집합, 그리고 우리가 미적 판단을 표현할 때 의존하는 규칙들의 집합은 대부분 결코 명시적이지 않고 또 분명하지 않다. 일상생활에서 옷을 입을 때 따를 수 있는 그리고 미적 판단의 안정적인 기준을 규칙들의 완전한exhaustive 목록을 도출해내기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패션을 지배하는 규칙들을 이해하고 기술하는 일은 미적 판단에 대한 표현의 사용을 정의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미적 판단을 이해하는 데 성공할 기회를 얻으려면, 우리는 패션을 지배하는 미적 규칙들이라는 종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118:2]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은 언어 게임과의 유비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패션에서의 옷입기dressing up in fashion 혹은 특정한 경우occasion를 위한 옷입기는 서로 다른 언어 게임에 참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른 게임이 아니라 [특정한] 하나의 게임을 하는 것만을 통해 그 게임을 이끄는 규칙들을 이해하는 게 가능하다. 같은 방식으로, 그러므로 패션을 이끄는 규칙들과 미적 반응들을 이해하는 게 가능하다. 사실, 주어진 맥락에서의 특정한 의복의 적절성correctness은 오직 두 사람이 동일한 미적 언어 게임을 할 때만 나타나며emerge, 그러므로 옷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평가할 수 있다. 패션에 대한 동일한 언어 게임을 공유하는 것을 통해, 그 패션을 지배하는 규칙들을 포착하는 게 가능하며, 따라서 [이를 패션에 대한 동일한 언어 게임을 공유하는 것을 통해] 특정한 유형의 상황에서 어떻게 적절하게 옷을 입는지에 관한 더욱 정제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5. 결론
[118:3] 결론을 내리자면, 지금까지 우리가 논했던 것을 고려하면, 비트겐슈타인의 미학적-언어적 패러다임과 패션을 결합시키는 일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의복의 의미는 맥락에 의존하여 변화할 수 있다; 패션이 따르는 규칙들은 영원하지eternal 않으며, 그렇기에 순환성이라는 속성과 패션이라는 일시적인ephemeral 존재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의복의 의미는 어떻게 옷을 입는지와 관련된 규칙들이 변화함에 따라 변화할 것이다. 이러한 규칙 집합은 패션에 고유한 문법 혹은 “옷입기의 문법”을 구성한다. 게다가, 규칙 따르기의 관습은 규칙에 대한 민감성sensitivity을 획득할 수 있게끔 하고 이를 통해 규칙에 관한 전문가가 되도록 하는 모방적 훈련에 의해 공고해진다. 이러한 규칙들은 영원하지 않기에,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표현이자 차별화에 관한 필요를 고려하면, 옷입기의 방식과 관련된 적절성 혹은 부적절성에 대한 기준을 무시하지 않는 동시에 이 규칙들 중 일부를 변형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패션이 미적 언어 게임의 성좌라고 말할 수 있다 - [이 성좌는] 끊임없이 뒤얽히는 언어적이고 문화적인 관습들의 집합으로 해석되는데, 그 자체의 문법을 가진 미적 언어를 형성한다.
[119:1] 결론적으로, 삶의 형식은 문화적 공동체와 역사적 공동체에서의 인간 관습의 집합을 조직하고, 패션은 이러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관습들 중 하나일 수 있다. 비록 패션이, 시간에 구속된 미적 규칙들에 따라 스스로를 구조화하거나 조직화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패션은 “삶의 미적 형식”이라고 불릴 수 있다. 삶의 미적 형식은 상호적 이해가 가능하고 사회문화적 공동체에 속하는 감각이 형성되는 공유된 지평shared horizon로서 기능한다. 동일한 방식으로, 삶의 미적 형식으로서의 패션은 공동체에 의해 공유되는 취향의 지평을 이끌어내는데, 이 지평 안에서 우리는 미적으로 스스로를 재인하며, 삶의 일상적 맥락 내에서 움직이는 공통의 미적 감각을 만든다.
